세종조차 자신의 판결을 후회한 조선 양반가 간통 사건
목숨 걸고 사랑했던 오랜 연인의 비극적 순애보
어떤 책은 단지 전체적인 스토리-당연하게도 읽기 전이니까 대략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때문에 읽기 싫을 때가 있다. 예를 든다면, 어린이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다룬 이야기나-이 경우 가해자는 항상 힘을 가진 자들이고, 그 힘으로 법의 망을 교묘히 피해가며, 이는 결국 나를 비롯해 지켜보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불륜을 담은 이야기-이 경우 비난을 받아야 할 상황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사랑이라고 부를만한 상황도 있겠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뭔가 불편한 느낌이 먼저 들기에 피하게 된다!-이다. 같지는 않더라도 그 누구에게나 피하고픈 이야기는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단순히 읽고 싶다, 읽기 싫다는 사실을 떠나서 아예 그런 책은 관심밖에 두게 된다. 그런데 가끔씩은 평소의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그런 이야기라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고정관념이라고도 할 수 있는 평소의 생각에 작게나마 어떤 균열이라도 안겨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불의 꽃』의 그런 책이었다. 어떤 끌림이 있는…….
정사를 보았다. 대사헌 하연이 말하기를, “비밀히 계할 일이 있사오니 좌우의 신하들을 물리치고 의정 이원만을 남게 하시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허락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나가니 하연이 계하기를, “전 관찰사 이귀산의 아내 유(柳)씨가 지신사 조서로와 통간(通奸)하였으니 이를 국문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라 유씨를 옥에 가두었다.
『불의 꽃』에 담긴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랑을 믿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조서로와 이귀산의 아내 유씨의 관계는 사랑이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시작된 슬프면서도 가슴 찡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말선초라는 불안정한 시기에 가족들을 잃게 된 녹주는 먼 친척벌되는 서로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녹주와 서로는 그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상처를 함께 보듬어가면서 그들만의 추억과 기억, 그리고 사랑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하지만 녹주의 모습이 탐탁지 않았던 서로의 어머니 경심의 방해로 그들은 떨어진 채 살아가게 되고, 서로가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무렵에야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된다. 오랜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은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그래서 결국에는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아프지만 결코 비켜나갈 수 없는 사랑이 그려진다.
“관상감에서 일하는 이들이 그러더라. 별보다 그 별을 찾아 검은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다고…….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보다 그를 그리워하는 시간이 더 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사랑한다!” -P256
처음부터 이것이 사랑이다, 라고 확실하게 말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씩 읽어가면서 내가 서로가 되기도 하고, 녹주가 되기도 하면서 조금씩 그 사랑이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사랑도 있을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거의 없을 것만 같은 사랑이기에 더욱 그랬고, 그래도 사랑이 있다고 믿고 싶기에 더더욱 그랬다. 세상을 살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랑을 그리워하게 되고,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사랑을 향해 덤비는 그들을 그리게 된다. 그래서 더 불타고 빛나는 사랑을… 그래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불의 꽃』은 그런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실, 『불의 꽃』은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다양한 단어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던 단어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와 한글을 읽고 있음에도 외국어를 읽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말이기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고, 언젠가 부터는 오히려 낯선 우리말을 만나는 재미에 빠져들기도 했다. 낯설지만 그저 막연히 낯설지만은 않은 기분이랄까. 낯선 단어,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면서, 이런 단어나 표현들이 있었음에 놀랐고, 반가웠고, 또 감사했으며, 즐거웠다. 그동안 너무 우리말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동시에 하게 되면서 말이다.
『불의 꽃』은 ‘조선 여성 3부작’의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죄가 되어 처벌을 받는 조선 여성들을 다룬 이야기, 그 두 번째 인 것이다. 비록 죄라고 불려도, 그래서 그 어떤 고통을 받게 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믿음이 바탕되는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 고마워하고 또 한편으로는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왜 그리도 그것을 의심하고 멀리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지금이라도 서로가, 그리고 녹주가 속삭이는 말에 귀 기울여 봐야 할 것 같다. 사랑을 하고, 또 그것을 믿으라는 그들의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