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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책 밖으로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 년 만에 당신을 다시 읽었다. 작년에 당신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신은 왜 로체스터에게 돌아가야 했는가? 그리고 유산을 상속받고, 잃어버렸던 친족을 찾는 등 거듭되는 우연은 대체 어쩐 일인가?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당신을 다시 읽으며 나는 비난의 화살을 나 자신에게 돌려야 했다. 나는 왜 당신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까? 다시 읽으니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보였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니 결말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무리될 수밖에 없음이 이해가 되는 면도 있었다. 당신을 읽고 나처럼 당신을 비난하려는 사람들에게 당신을 변명하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쓴다.

  당신은 책을 읽는 여성이다. 19세기 초중반, 당신의 시대, 여성은 남성에 속박되어 있었고, 태어난 땅에 묶여있었으며, 관습에 얽매여 살 수밖에 없었다. 여성에게 대학의 문이 열리고, 선거권이 주어진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고, 남성이 옆에 없으면 재산을 상속받을 수도 없었다. 당신이 그러한 억압을 뛰어넘는 유일한 통로는 아마도 책이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당신의 독서 목록에 들어있는 조류도감이나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책은 의미심장하다.

  당신은 1인칭 주인공 시점 소설의 주인공이다. 당신은 목소리를 가진 여성이다. 당신은 아마도 책에서 읽었을 자유나 평등이라는 말을 속으로 끊임없이 반복하고, 남성에게 동등한 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당신은 마음속에서 상대를, 즉 남성을 평가한다.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켜 '감히' 자신들을 평가하게 하는 내용의 책을 손에 받아든 남성들의 불쾌해하는 표정이 훤히 보인다. 악질적인 비방에 가까운 당대의 평가들을 이해할 만하다. 

  당신은 타인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그들의 평가에 민감하다. 당신은 오해받고, 무시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울분을 쏟아내곤 한다. 당신의 열정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로우드 학교에서 만난 친구 헬렌과는 전혀 다르다. 신이 언젠가 자신을 구원해줄 것이기에 그녀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런 헬렌은 죽고, 당신은 살아서 그곳을 떠난다. 당신에게는 새로운 일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사랑이 필요했다. 당신은 작품 속에서 인간에게는 사랑할 대상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신은 늘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꾼다. 실제로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닌다. 당신은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다. 당신이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지붕 위에 올라가 경계선 너머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단지 장소의 이동을 소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의 삶과는 다른 어떤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런 당신이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사는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로체스터를 비롯한 남성들에게 장소를 옮겨가는 일은 어떤 의미인가? 남성들에게 그것은 배경을 바꾸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로체스터는 결혼해서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별장에 가서 살자고 제안한다. 손필드 장에서 당신은 로체스터의 천사였고, 요정이었다. 그렇다면 손필드 장 밖에서 로체스터가 기대하는 당신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여전히 빛나는 보석, 아름다운 꽃, 귀여운 종달새일 뿐이었다. 이는 세인트 존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여성의 위치는 영국에서도 남성의 보조자일 뿐이었고, 해외로 나간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선교사업을 보조하는 역할일 뿐이었다.

  이 대목에서는 당시 영국의 제국주의 식민지 경영의 역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영국을 포함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입장이란 무엇이었는가? 너희들은 후진적이고 야만적이니 나를 보고 배워라. 나는 옳다. 나는 앞서 있다. 따라서 나는 하던 대로 할 것이다. 이것은 영국이 식민지를 향하여 한 말인 동시에 남성이 여성을 향해 한 말이기도 하다. 제국주의 역사를 주도한 사람들은 물론 남성들이었다. 당신이 삼촌에게 받은 유산도 실은 식민지에서 온 돈이라는 것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은 변화한다는 것을,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로체스터의 청혼을 받아들이면서도 당신은 훗날 그가 사랑의 열정이 식고,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을 알고 있다. 버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은 로체스터에게 모든 상황이 변했으니 나도 변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당신의 성숙한 태도 앞에서 모든 장애를 뛰어넘는 사랑이니 영원한 사랑의 약속이니 운운하는 오늘날의 통속극들은 얼마나 너절하고 초라한가?

  시간이 흐르면서 당신 자신이 변화하기도 했다. 외숙모의 죽음을 보기 위해 게이츠헤드로 돌아간 당신을 사촌 자매들은 여전히 냉대하고 무시했다. 그런 언니들 앞에서 당신은 어렸을 때처럼 괴로워하는 대신 태연하게 그림을 그렸다. 나는 당신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흐뭇했다. 그런데 그림은 다름 아닌 로체스터의 초상화였다. 당신은 이미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게이츠헤드에서 다시 손필드 저택으로 돌아가면서 그동안 집다운 집이 없었던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에 대해 말한다. 

  당신의 이야기를 집을 떠난 후 고난을 겪고, 세인트 존의 유혹에 빠졌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로체스터와 결합하는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숱한 이야기들의 문법을 답습하는 것이다. 당신과 당신의 이야기는 분명 경계선을 완전히 넘어가지는 못한다. 사실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누구도 그것을 두고 당신을 비난할 수 없다. 다만 나는 경계선 밖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려는 당신의 태도를 기억하려 한다. 손필드 저택의 지붕에 올라 경계선 밖을 바라보며 그것에 대해 말하는 당신, 이것이 당신 제인 에어와 당신을 세상에 내보낸 작가 샬럿 브론테가 놓인 문학사적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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