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책을 읽고 나면 굳이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라는 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팩트는 확실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허균은 프랑스대혁명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랄까? <파격의 고전>에서는 내용에 집중하여 이런 내용의 작품을 허균이 썼을 리 없다는 의심을 적고 있다면, 이윤석의 책에서는 조선시대 한글소설의 발생과 유통과정, 국문학 연구 초창기의 연구행태를 추적하며 제목처럼 그 의심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설사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저자가 대학원 시절에 담당교수에게 들은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허균을 <홍길동전>의 작자로 만들어 우리는 대체 어떤 국익을 얻었는가? 한글소설의 출현이 200년 쯤 앞당겨지고, 다른 한글 고소설들과 달리 작자가 알려진 작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어떤 국익을 창출하는가?
국문학사를 이렇게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쓰다 보니, 나는 고소설이 발전해서 신소설이 되고 신소설이 발전해서 근대소설이 된다는 허무맹랑한 국문학사를 배워야했던 것이다. 좀 늦으면 어떠한가? 나라 밖의 영향을 받았으면 또 어떠한가? 적어도 학문하는 사람들이라면 이제 나라 사랑은 그만하고, 진리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다정도 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