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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님의 서재
  • 짝 없는 여자와 도시
  • 비비언 고닉
  • 15,300원 (10%850)
  • 2023-01-31
  • : 3,336


나는 외로움을 좀체 느끼지 않지만, 이따금 강렬한 외로움이 찾아올 때는 아무 책이나 펼쳐든다. 그럴 때 운이 좋으면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몇 개 담긴 책을 발견한다. 정말 정말 운이 좋으면 온 페이지에 밑줄을 긋고 싶은, 그야말로 '운명의 짝' 같은 책을 만나기도 한다. 비비언 고닉의 <짝 없는 여자와 도시>는 나에게 후자였다.


인간관계에 있어 만족하는 법이 없는 나는 내가 어느 누굴 만나도 성에 차지 않아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그래서 나는 연애에도 결혼에도 욕심이 없다. 내 안의 공허함은 오로지 나의 몫. 아무도 그걸 채워줄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바뀔 수 없는 부분이니 그냥 나는 이렇게 생겨 먹은 인간이구나, 받아들일 수밖에. 비비언 고닉은 이런 식의 자기 체념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린 영원히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고 느끼는 인간들인 것이다. (...) 어쩔 수가 없다. 우리도 좀 달라지고 싶지만 어찌됐건 우리가 느끼는 삶이란 게 그러니까. 그리고 삶을 느끼는 방식은 결국 삶을 살아낸 방식일 수밖에 없다."(p.8)


모름지기 친구란 서로의 결점과 약점을 가감 없이 나누는 사이다. 비비언 고닉과 그의 친구 레너드는 "손상의 정치를 공유하는 사이"로, 쉽게 말해 둘도 없는 "절친"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만 만난다. 둘 다 부정적이고 불평불만이 많은 성격 탓에 얘기하다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처받을 줄 알면서도 우리는 왜 친구에게 제 속마음을 유리구슬처럼 내보이게 되는 걸까? 그에 대한 비비언 고닉의 답은 이러하다.


"우정이라는 결속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의 감정적 무능―공포, 분노, 치욕―을 인정하는 솔직함이다. 함께 있을 때 자신의 가장 깊숙한 부끄러움까지 터놓고 직시하는 일만큼 우리를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p.28)


한때 두 사람을 끈끈한 유대감으로 연결시켜주었던 여과 없는 진실 고백이 언제든 상대를 겨냥한 날카로운 창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마음 한편에 항상 불안과 외로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 그나마 위로가 될 만한 점은 도시에 이처럼 외롭고 쓸쓸한 이들이 모여 산다는 것이다. 그건 고닉이 대도시 뉴욕을 사랑한 이유이기도 했다. 고닉을 비롯한 여러 예술가에게 "도시의 의미는 쓸쓸함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데 있었다.(p.14)"


친구도 애인도 남편도 고닉의 본연적인 고독, 외로움, 공허를 채워주지 못했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경험한 고닉은 "진정한 짝"을 향한 기대를 노년에 들어서야 완전히 거두었다. "진정한 짝"이란 유니콘과 같은 존재, 즉 상상으로 그려낼 수는 있지만 현실에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고닉은 자신이 그간 찾았던 게 왕자가 아니라 완두콩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공주와 완두콩에 관한 동화를 이해하게 된 건 그 무렵이었다. 공주가 그동안 찾아다닌 건 왕자가 아니라 완두콩이었다. 스무 겹 매트리스 밑에 깔린 완두콩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 바로 그때가 정의를 내리는 순간이다. 지금껏 이 길을 걸어온 이유, 거기서 확인하게 된 사실―불경스런 불만이 삶을 끝없이 가로막으리라는 것―그것이 바로 이 여정의 의미임을."(p.71)


나 역시 고닉과 같은 페미니스트로서 위 내용에 몹시 공감하는 바이다. 여자에게 필요한 건 "왕자"나 "진정한 짝" 따위가 아니라 내 이부자리를 불편하게 만든 "완두콩"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다. 그 존재를 깨닫는 이상 돌아갈 길은 없다. 사랑은 영혼과 정신의 영역에서 이뤄질 때 무기한으로 유지될 수 있는데, 남자는 여자를 그처럼 사랑하지 못한다. 남자 앞에서 여자는 끊임없이 대상화될 뿐이다. 고닉은 몇 번의 연애와 결혼을 통해 그 사실을 몸소 깨닫는다.


짝 없는 여자, 혼자 살기를 택한 여자에게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그와 비슷한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일 것이다. 그리하여 번잡한 도시, 떠들썩한 인파 속에서 고닉은 편안함을 느낀다. 낯선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고 친절을 받는 순간만큼은 외로움도 공허도 잠시 잊을 수 있다. 모르는 사람들과 나눈 몇 마디 대화, 시답지 않은 농담, 찰나의 웃음을 통해 우리는 순수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식탁에서 저녁을 먹으며 창밖으로 도시를 내다본다. 오늘 내 앞을 가로질러간 모든 사람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들의 몸짓이 보이며, 나는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본다. 그들은 순식간에 나의 동행, 근사한 동행이 된다. 속으로 생각한다, 아는 사람과 함께하느니 오늘 밤은 차라리 당신들과 여기 있겠노라고."(p.221)


그저 한 도시에 머문다는 사실만으로 고닉은 수많은 "당신들"을 응원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고닉이 그와 같은 애정을 품는 것은 그들이 존재해야 이 도시가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사람이 빠져나간 도시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 그러니 도시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려면 우리 모두가 필요하(p.218)"다. 각자가 제 몫의 외로움을 견디는 도시에서 우리는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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