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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수숫대 / 장석남
-"貧"

막 이삭 패기 시작한 수숫대가
낮달을
마당 바깥 쪽으로 쓸어내고 있었다
아래쪽이 다 닳아진 달을 주워다 어디다 쓰나
생각한 다음날
조금 더 여물어진 달을
이번엔 洞口 개울물 한쪽에 잇대어
깁고 있었다

그러다가 맑디맑은 一生이 된
빈 수숫대를 본다
단 두 개의 서까래를 올린

속으로 달이
들락날락한다

 

"井上有의 <貧>字를 보며" 무한한 세상 하나를 또 그려내고 있다. 자세히 보니 두 개의 서까래를 올린 ‘빈’자‘ 안에는 달도 칼도 조개도 온 세계가 다 들어 있다  <김인석·시인> 

 

이 시 속에는 세 가지 세계가 존재한다.

매달 차고 기우는 일을 반복하는 달의 세계와,

열심히 알곡을 채우는 노력을 다하면 수수를 비워내고 빈 수숫대가 되고, 다시 빗자루가 되는 수수의 세계와,

오랜 문명을 유지해온 중국의 문자, 한자 ‘가난할 빈 貧’ 자에서 상상하는 문자의 세계이다.

 

시인은 자라나는 수숫대 위에서 차고 기우는 달을 바라본다.

수수가 여물어서 알곡이 들어차는 모습과 초승달의 가벼워진 모습을 보면서,

마당을 쓰는 마당빗자루가 달을 쓸어내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한다.

다 이지러진 달, 쓸모도 없어 보인다.

쓸모. 필요없는 것이 너는 왜 거기 그렇게 있는 것인가?

 

막 이삭 패기 시작한 수숫대가
낮달을
마당 바깥 쪽으로 쓸어내고 있었다
아래쪽이 다 닳아진 달을 주워다 어디다 쓰나

그렇게 생각한 다음 날,

마을 입구(동구 洞口) 개울물을 지나가다가 바라본 낮달은,

어제 수숫대 위에 떠오른 달보다 조금 더 커진 달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달이 조금 더 여물어졌다고 생각하면서, 개울물에 잇대어서 꿰매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한다.  개울물의 흐르는 모습과 달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 것같다.

 

생각한 다음날
조금 더 여물어진 달을
이번엔 洞口 개울물 한쪽에 잇대어
깁고 있었다

아무 욕심없이 가득 찼다가 텅 비는 달을 보면서,

가을이 되어 알곡을 인간에게 모두 내어 주소, 텅 빈 수숫대를 보면서,

인간이 가져야 할 마음 가짐을 생각해 본다.

아, 인간인 나는 너무 욕심으로 가득한 것이 아닐까?

욕심을 채우려고만 노력하며 살고 있지 않나?

 

한자 ‘가난할 빈’자를 떠올려 본다.

그 속에는 ‘나눌 분 分’ 자도 있고, ‘달 월 月’ 자 도 있고, ‘조개 패 貝’ 자도 있다.

나눌 분 자는 어떻게 보면 서까래가 달랑 두 개뿐인 지붕 같기도 하다.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붕을 떠받친 서까래가 두 개뿐이라니. 참 소박하다.

그런 것이 가난한 삶이고, 자연의 이치 아닐까?

수숫대 위의 달을 보면서,

가난할 빈 자를 보면서,

자유자재하게 하늘을 옮아 다니며, 텅빈 마음으로 지나가는 낮달을 보면서,

나의 삶을 반성해 본다.

 

그러다가 맑디맑은 一生이 된
빈 수숫대를 본다
단 두 개의 서까래를 올린

속으로 달이
들락날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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