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형식은 네 명의 주인공이 화자가 되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이다. 같은 사건을 서술하는 네 명의 다른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무래도 각자의 챕터를 맡은 사람의 입장에서 서술되기에 대화체의 이야기 서술이 아닌 머릿속 생각을 읊조리는 형식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남의 생각을 좇아가게 되니까 대화글보다는 묘사, 은유적인 표현이 많아서 좀 더 집중력을 요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소재자체가 재미있는데다가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생각들이 이야기에 흥미를 돋우워주었다.
간단한(?-과연 간단하게 끝낼 수 있을까...)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일라이라는 대학생이 '두개골의 서'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고 그 책에 담긴 영생에의 비의를 보게된다.
그 비의중 중요한 두 가지 중 하나가
넷으로 이루어진 동아리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거다. 마침 일라이의 룸메이트가 네 명이다. 그들은 부잣집에 덩치 좋고 생각 별로 없는 티모시, 미국 남부 농촌 출신에 몸좋고 잘생기고 머리까지 좋은 올리버, 약빠르고 시쓰기를 좋아하는 동성애자 네드, 여리여리하고 똑똑한 언어학 전공의 유대인 일라이까지 네 명.
또, 이 책의 가장 큰 모티브가 되는 비의는 다음과 같다.
"아홉번째 비의는 이것이다. 생명의 대가는 언제나 생명이어야 하는 법. 고귀한 자여, 영원은 반드시 절멸에 의해 보상되어야 함을 알라. 그 불변의 균형을 기꺼이 수용해야 할지니. 둘은 우리 품에 받아들여질 것이되 둘은 암흑으로 가야 할지로다. 사는 것이 매일 죽는 것이듯, 죽음으로 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다. 사각의 형상을 갖춘 형제들이여, 그대들 중 누군가 스스로 영생을 포기함으로써 동지들이 자기 부정의 의미를 깨닫도록 할 수 있겠는가? 또한 그대들 중 동지들에 의해 희생되어 배제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케 할 자 있는가? 희생자들이 스스로 정하게 하라. 사멸의 고귀함으로써 삶의 고귀함을 결정하게 하라." p76-77
애매하게 씌어져 있으나 이들이 머리를 싸매고 해석해낸 결과는 우선 자진해서 자살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남은 셋 가운데 둘이 다른 한 명을 살해한다. 그러면 남은 둘은 영생을 할 수 있다. 그것이 영생의 조건이다. 이것이 비유적인 것인지 실제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인지. 그들은 그런 정확한 믿음 없이 어찌보면 진지한 고민없이 봄방학 기간을 맞아 두개골 사원이 있다는 애리조나로 떠난다.
난, 내내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생이 좋다는 건 알겠다만, 그게 다른 누군가의 희생 위에 이루어지는 거라면, 영생이 무슨 소용이랴! 영원토록 그 죄책감은 어떻게 할래? 엉?
어찌되었건 그들은 애리조나에 도착하여 두개골의 사원을 발견해낸다.
사원에서 두개골의 수호자들을 만나 그들로 부터 일종의 수련을 받게 된다.
이후 이들이 영생을 얻었을까? 읽어보시라.
이 책을 읽고 내게 가장 오랜 생각을 하게한 부분이 두 군데가 있었다.
그 중 한가지는 영생을 얻는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일라이의 상상 부분이다.
영원한 삶을 얻는다면 그가 하고 싶은 일들이라는 게 내가 가진 생각과도 무척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적어진다는 사실에 두렵다. 좀 더 뭔가를 이루고 싶고 내가 좀 더 어렸다면, 내게 좀 더 시간이 많다면 이것도 저것도 다 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들.
그런데 영원한 시간이 있다면 몇십년의 여행, 몇십년의 수련, 몇십년의 독서, 집중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팔 수 있을 거니까. 정말 다양한 분야의 장인이 될 수 있을 거다. 무척 매력적이다! 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으니까. 그걸 모조리, 그리고 깊게. 다 팔 수 있다는 거야. 혹했다. 오옷. 영원한 삶이란 영원한 시간이다! 좋다!
그런데 그 뒤의 이야기가 뒷통수를 친다. 결혼은 할 수 없다. 결혼을 했다가도 십여년이 지나면 이혼을 해야할거다(늙지 않는 사람이 두렵지 않을 배우자가 있을까?) 신분증은 여러 번 갈아치워야 할 거다. 예전의 자신을 어떻게 죽이고, 또 자신의 재산을 새로운 자신에게 넘겨줄 수 있을까?
영원한 삶은 또한, 영원히 숨어 지내야하는 삶과도 같다. 가까운 사람은 만들 수 없는 삶. 얼마나 외로울까. 영생이란 처음엔 좋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형벌과도 같을 거다.
예전에 영원한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한 영화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이랜더였던가? 그의 삶이 무척 불쌍했었는데.
각설하고, 그리하여서 영생까지는 별로고 한 백년 정도만 더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늙고 병들지 않은 젊은 상태로. 뭐, 상상이니까 욕심은 있는대로 부려볼테다.)
또 기억에 남는 한 가지는 수련 과정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가장 큰 치부를 고백하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매일 일정한 시간에 네드는 티모시에게 자신의 치부를 고백한다. 그럼 그 다음날은 티모시는 올리버에게 고백. 다음날, 올리버는 자신의 가장 큰 비밀을 일라이에게 고백. 마지막으로 다음날 일라이는 네드에게 고백.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비밀은 무척 음험하고 추했으나, 누구나 까뒤집어 보면.. 이쯤의 추함은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어쩐지 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자신의 비밀을 누구에게 털어놓는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기도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후련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비밀이 이 책에서와 같이 절대 고백하는 사람 외의 다른 누군가에게 밝혀지면 안된다는 그런 강력한 제약 아래서여야겠지만. 난 뭘까? 내내 생각했다. 난 어떤 고백을 할까? 내 속의 어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