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실패한 사람이 된 것 같았을 때, 나는 (아마도) 서른다섯이었고 갈 곳은 전주뿐이었다. 엄마랑 아빠는 내가 전주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만 결국 나는 적응하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적응하지 않았다.
다시 서울로 가는 날, 엄마는 직접 담근 생강차를 싸주었다. 이 생강을 어떻게 깠냐면, 하고 엄마는 생강 까던 날을 회상했다. 나도 없고 아빠도 없는 적막한 밤 홀로 TV 앞에서 저릿저릿 아픈 손을 참고 불편한 자세를 바꿔가면서 네 시간이나 생강을 깠다고.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나는 엄마의 외로움을 외면한 적이 많았다. 엄마의 외로움은 애써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더 처연하게 전해지는 외로움이었다. 나는 엄마가 나한테서도 똑같은 외로움을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가끔 쓸쓸했다는 것도 안다. 그 생강차가 엄마의 외로움을 대신 말해주는 듯해 마음이 아렸으면서 다 썩도록 방치해 끝까지 먹지도 못했다.
엄마는 책을 출판하고 싶다고 올해 초부터 내게 도움을 청해왔다. 내 앞가림도 못할 만큼 우울하고 무력한 시기였다. 하기 싫은 마음만큼 마음 다해 읽지 못했다. 여물지 못한 글 같았고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굼벵이처럼 교정하는 주제에 안 좋은 부분만 눈에 들어와 엄마한테 짜증도 냈다.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지 시집으로 가치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여름을 맞았다. 다행히 나는 조금씩 살아나는 중이었다. 엄마 시가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엄마의 모든 게 고스란히 담긴 시를 읽으며 나는 우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가 얼마나 꾸준하고 단단한 사람인지,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 사람인지, 스스로 어떻게 즐거움을 만들고 외로움을 돌보는 사람인지, 나는 이제야 겨우 알게 됐다.
<수라>를 보러 가는 길에 엄마는 돌보는 환자가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난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수라를 보는 내내 엄마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마음에도 노력을 기울이는 엄마를 보며 나는 만난 적 없는 사람을 걱정하고 사랑스러워하는 지경이 되었다.
엄마의 시집을 만드는 동안 엄마는 나한테 너무 큰 덤이었다. 내가 몰랐던 엄마, 내가 외면했던 엄마가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계절이 지나간 자리마다
남아 있는 추억 부지런히 챙겨 들고
동생이 숨 쉬는 건물이라도 보고 싶어
단숨에 달려갔다는 큰 언니는 영락없이 엄마를 닮았다
_형제의 마음- P12
덜컹
얼음 문이 닫힌다
구름마다 비를 머금고
소낙비가 되었다가
구슬비가 되었다가
가랑비가 되었다가
가장 추운 방에 홀로 두고 나온다
_입관- P20
저녁이 지나가고 환자와 분리되는 밤이 온다
간이침대에 잠자리를 펴고 눈을 감으면
낮에 불었던 바람들은 쉽게 잠을 잔다
_오롯한 내 시간- P67
깜깜한 운동장을 겁 없이 걷게 하고 뛰게 만드는 건
발아되지 못한 내 안의 작은 씨앗들이다
새벽까지 빛나는 별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침에 부는 바람을 만질 수 있는 것도
발끝에 부드러운 이슬을 밟을 수 있는 것도
생명처럼 움직이는 내 안의 씨앗 때문이다
_아침의 기적- P71
그녀의 이름은 모르지만 그녀의 모양을 알았다
제 곡조를 이기고 있는 침묵 속에
얼마나 큰 구름이 들어 있는지 헤아릴 순 없지만
뚝뚝 떨어지는 행복지수가
청포도처럼 싱그럽다는 건 알았다
_행복지수- P86
지구라는 섬에서 누렸던
수많은 순간들이 사치였다 할지라도
이 작은 섬에서 최고의 욕심은
그 사치를 닮아가는 것이다
_섬마을 사람들- P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