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을 다 읽고 중국 친구와 한, 중 양국에서의 일본 소설의 영향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중국 친구는 “중국 독자들은 일본 소설을 잘 읽지 않아요. 그리고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서 앞으로도 영향력이 크지 않을 거에요.” 내 생각은 달랐다. “반일감정으로 치면 한국인이 중국인보다 훨씬 극렬하지. 하지만 일본 소설의 독자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냐? 민족 감정은 별도로 하고 작품의 재미와 문학성이 월등하면 그 파급력을 막을 수 없는 거야. 중국도 5년만 있으면 일본 소설 열풍이 불어닥칠 거야.” 중국 친구는 수긍하는 척했지만 썩 이해 가는 표정이 아니었다. 내가 또 말했다. “현재 한국 독자들은 일본 소설을 ‘볼 능력’이 있어. 중국 독자들은 아직 그런 능력이 없지. 문화 발전의 격차가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5년 후에는 마찬가지로 그 ‘볼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거야. 중국 출판계도 미리 그 때를 대비해둬야 할 거야.”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5년 후에도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 소설의 수준을 따라잡을 만한, 그들의 소설에 비견할 만한 소설을 ‘쓸 능력’은 갖지 못할 거야. 일본의 문화 인프라에 절대로 미치지 못할 거야.” 나는 입맛이 씁쓸했다. 중국 친구가 물었다. “일본 소설이 그렇게 대단해요? 어떤 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이유는 많다. 신인들을 양산해내는 일본의 숱한 문학상의 파워도 중요하고, 그런 신인들이 데뷔한 후 전업작가로서 꾸준히 활약할 수 있는 경제, 문화적 토대도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문학 내적인 이유도 존재한다. “너, 한국과 중국은 엘리트문학과 장르문학이 너무 뚜렷이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지 않니?” 중국 친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일본은 소위 장르 작가들이 만만치 않은 ‘필력’을 갖고 있어. 또 장르문학마다 권위 있는 문학상이 있어서 그런 작가들을 뒷받침하지. 너희나 우리나 짧은 시기에 이것이 가능하겠냐? 어차피 21세기 문학의 중심 코드는 대중적 상상력이야. 도스토예프스키의 시대가 아니라고. 장르문학이 주도권을 갖고 독서계를 이끌어갈 거야. 따라서 문학성과 재미를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작가군을 보유하고 엘리트문학과 장르문학의 간극이 거의 없는, 이른바 ‘경계문학’의 대국이 동아시아 문학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될 거야.”
나의 이런 ‘거창한’ 견해를 한층 굳어지게 만든 작품이 바로 [스킵]이었다. SF적 설정 위에서 성장소설의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는 한편, 인간적 시간에 관한 진지한 사유를 가능케 하는 이 소설, [스킵]. 장르문학의 놀라운 진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