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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공장

 

이 지독한 삶을 몇 번이라도 다시? 이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능한 일이더라도 고개를 저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삶을 몇 번이라도 다시' 누릴 수 있다면 왜 하필 '지독한 삶'인가? '행복한 삶', '보람 있는 삶'이면 금상첨화가 아닌가. 하지만 이 책의 [인생]편에서 말하듯 인생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하나 벗겨내는 양파와 같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양파를 다 벗겨낸 후의 후련함에 이르기까지는 오래 눈물을 흘려야 한다. 짧은 후련함을 위해 오래 눈물을 흘려야 하는 '지독한 삶'의 존재 조건은 인류에게 보편적이다.

[몇번이라도 좋다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는 우리가 '지독한 삶'을 왜 지독하게 버텨야 하는지, 또 무엇으로 '버티는 것'을 넘어 미소로 음미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 한다. 지독히 재수 없는 날, 밤거리에서 만난 도둑고양이를 친구 삼기([검둥이]), 135일의 칩거를 끝내게 한 희한한 꿈(내 삶이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일깨워준), 창작의 전제조건이 상처라는 걸 알고 그것을 껴안는 경험([꽃]) 등등 우리에게 이 '지독한 삶'을 살아야 하고, 살 수 있고, 끝내 몇 번이라도 감내하겠다고 다짐하게끔 하는 이유는 사실 이 '지독한 삶' 곳곳에 조약돌처럼 박혀 있다. 다만 손톱을 다쳐가며 그것을 파내거나, 외면하고 파내지 않는 것은 우리의 몫.

항상 긍정적으로, 희망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세속적 경구는 사실 인간에게 당위가 아니다. 그러나 이 '지독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은 당위다, 어찌 보면 달갑지 않은. 이 책을 보고 찬찬히 돌아보자. 그 당위를 당위 아니게끔 만드는, 내 삶의 밭에 박혀 반짝이는 조약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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