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후기에 이런 말이 있다. 이 책은 자신이 지금까지 다뤄온 주제들, "레즈비언, 근친간의 사랑, 텔레파시와 심퍼시, 오컬트, 종교 등등"을 모두 모아놓았다고. 이것들 모두 어느 하나 비주류가 아닌 것이 없으며, 그래서 보통 이상으로 시선을 끈다.
일본소설의 미덕 중 하나는 무엇일까? '담담함'. 하지만 그건 담담함 그 자체가 아닌, 담담할 수 없는 감정과 사태를 담담하게 전할 수 있는 자기통제력의 산물이다. 이 과정에서 담담함의 객체가 위에서 말한 근친애, 레즈비언 등 비일상적인 것들이라면 효과가 더 크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게 있다. '담담함'은 어디까지나 진정성을 담보해야 한다. 아니면 객기나 선정적 포즈로 전락할 테니까.
바나나의 [N.P]에서 보이는 담담함은 진정성일까, 객기일까. 나는 책을 덮고나서도 헷갈린다. 중간 이상까지 객기라는 판단에 기울었지만 결말 부분의 그 섬세한 문체에 홀려 진정성이 아닐까 자문하기도 했다. 역시 이것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 나름의 몫.
[N.P]는 역시 바나나문학(이런 말을 쓸 수 있다면)의 정수 혹은 한계이다. 그녀가 이 이상의 작품을 쓸 수 있을까? 난 회의적인 입장이다. 더더욱 그런 것이 나는 그녀의 [키친]이 훨씬 매력적이었으므로. 청춘물의 작가는 보통 데뷔작이 가장 좋다. 그리고 청춘물 전문 작가는 그저 박제로 남거나, 남는 것이 좋다. 슬프지만 합당한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