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본 저서 목록만 보더라도 '글쓰는 기계'가 아닐까 의심스러운 추리물의 대가 미야베 미유키.
그리고 게임이라고는 테트리스밖에 모르는 내게 '명품게임'이라 알려진 'ICO'.
이 두 가지 선지식 없이 [이코-안개의 성]을 펼쳐들었다. 책 한 권을 읽으려 사전 정보를 성실히 머리 속에 빼곡이 쌓아둘 수 없는 내 개인 스케줄의 문제로.
나는 내 표상 능력으로 표상 불가능한 상상 밖의 시공을 늘 꿈꾼다. 그런 시공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문자텍스트, 영상물은 무조건 다 좋다.
하지만 스탠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내게 무리였다. '상상 밖의 시공'이 그야말로 내 상상력의 한계 밖에 있었으므로. 한마디로 구체적인 표상이 아니었다.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보면 주인공이 본 SF의 한 장면이 나온다. 이름 모를 혹성의, 몇천 킬로미터 깊이의 붉은 협곡 속을 헤매는 우주인의 고독이 잊혀지지 않는다.
만화 [브레임]을 보면 불특정 연대의 미래에 수직적 구조물의 파괴된 공간을 '넷단말 유전자'를 찾으러 여행하는 파이터가 나온다. 인간이 부재하는, 오랫동안 '자기충족적 삶'을 살아온 거대 콘크리트 구조물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코]의 안개의 성은 위의 '상상력이 허용하는 상상 밖의 시공'들의 하나다. 수천 년간 시간이 정지된 공간, 그 속에 머무는 삶은 육체적 삶이 아니라 영혼 그 자체, 그리고 마법에 의해 성숙과 노화의 가능성이 박탈된 가녀린 소녀 한 명. 나머지는 공허한 암흑과 석상이 돼버린 희생자들뿐이다.
그속을 뛴다, 이코와 요르다는. 요르다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지만 그곳을 황폐화시킨 자책감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이코는 그녀를 데리고 성을 벗어나고 싶지만 모든 비극의 원인이 그녀에게 있다는 당혹감이 엄습한다. 그래, 아무래도 좋다. 우선은 뛴다, 도주한다. 비정상적인 성의 구조를 헤집으며 암흑과 여왕을 피해 미로 곳곳을 헤맨다.
몇 분, 몇 시간, 며칠을 뛰고 있는지, 목마름은 없는지 피로는 없는지 리얼리스틱한 감각은 부재하다. 과거의 상기와 현재의 긴장, 미래의 막막함이 두 주인공과 독자의 사념의 전부다. 두렵고 슬프고 흥분되며 이 세 감정이 영구동력의 모터인 양 그들의 다리와 우리의 시선을 재촉한다. 도주는 공간적인 이동만이 아니다. 요르다와 안개의 성의 슬픈 역사가 휙휙 지나치는 풍경 속에 흩뿌려진다.
그 시공 속에 다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