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희곡은 연구계에서는 보통 <해서파관>이라고 원제로 표기한다. 중국 인명의 표기 규칙은 1911년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그 이전 인물은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 그 이후 이름은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아무래도 원서가 중국어가 아니라서 역자도 중국 관련 연구자가 아니다 보니 이런 자잘한 오류가 있는 듯. 2부에서도 명나라인가 여튼 고대 관리 이름을 중국식 발음으로 표기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1959년 여름에 펑더화이가 숙청된 뒤로 정치적 기류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는 루산 회의에서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 장군이 하이루이인 것처럼 보였다. 「하이루이의 파면」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우한의 희곡이 매우 다른 관점에서 읽힐 수 있게 된 것이다.- P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