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나는 현장에서 누군가가 준 상처에 평생 매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고, 또 아무도 준 적 없는 상처를 스스로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도 보았다. 긴 시간을 살아오는 동안 누군가와 나누거나 풀지 못한 상처는 왜곡된 기억을 만들어내고, 자기 위주의 태만한 생각은 도리어 삶을 무겁게 한다.- P248
범죄를 쫓고 범인을 연구하는 사이 나는 모든 사건들에 결코 쉽게 단정할 수도, 단죄할 수도 없는 수많은 상황이 얽혀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내 개인의 감정과 잣대로 누군가를 함부로 비난하기도 미워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P253
어떤 자들은 꼭 자기 사고만큼의 언어로 한 사람의 생을, 나아가 세상을 더럽힌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P267
긴 형사 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쉽사리 선악과 시비를 가리기 힘든 무수한 사건을 접했음에도, 나 역시 내 시선과 마음이 내 경험치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경험치를 뛰어넘어 상대의 진실을 들어주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에게 진정 필요한 말을 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수시로 절감한다.- P268
그래서 나는 늘 이야기한다. 형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현장은 사람의 이야기였고, 그 자체가 철학이자 인류학, 거대한 인문학의 산실이었다. 사람들의 욕망과 슬픔이 버글거리는 그 현장에서 나는 결코 이기적일 수 없었다.- P284
범죄 현장에서 본 현실은 너무나 잔인했고 직접적으로 아파서, 상상 그 이상의 것을 지향하지 않으면 그 어디서도 위로받을 수 없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이 잔혹하고 믿기 힘든 범죄 현장 너머엔 인간의 선이, 사람 사는 도리가 있다고 적극적으로 상상해야만 했다. 그렇게 눈앞의 절망을 보고도 끝내 희망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P287
인간은 결국 자신의 핵심 감정과 마음의 소용돌이를 이해하고 풀어가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서로에게 각자의 꼴이 있고, 감당해야 할 고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롭고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P294
형사 박미옥의 철학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다. 애정 없이 범인을 잡는 일에만 성취감을 느낀다면 형사가 아니라 사냥꾼이다.- P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