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이렇게 자주 내 일에 대한 성과와 보답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야 비로소 다음을 향해 넘어갈 수 있고 힘들어도 견딜 수 있는 에너지를 비축한다.
일의 고통을 이겨낼 힘도, 일하다 얻은 상처를 싸매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동력도 모두 일이 주는 기쁨과 슬픔 속에 있었다.- P165
형사의 촉이란 희한해서 별거 아닌 일에서도 범죄의 기미를 감지하고, 남들은 다 이제 그만 놓으라 하는데도 내 손으로 끝장을 봐야만 직성이 풀릴 때가 있다. 단순 가출신고에서도 형사의 촉이 꿈틀거리고, 사건을 해결한 보답으로 꽃향기 짙은 마음이 실린 손편지가 배달되는 이곳을 어떻게 떠날 수 있을까.- P180
형사의 두려움은 예견되어 있고, 범인의 두려움은 자초한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두려움은 난데없다. 왜 겪어야 하는지 모를 세상 억울한 두려움이 될 수 있다.- P182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안하무인 범죄자의 뱀 같은 눈보다 두려움에 젖은 범인의 흔들리는 눈빛이 내 마음에 더 오래 각인된다. 그것은 그들 역시 인간이라는 증거이므로. 인간이기에 변할 수있다는 희망이므로.- P189
우리 삶은 각자의 것이지만, 인간이 인간으로서, 내가 나로서 그다음을 장담할 수 없는 영역도 있다는 것을 나는 마약수사를 할 때마다 실감한다. 마약의 중독성보다 강인한 인간의 의지는 없으며, 마약은 인간의 의지를 희미하게 하고 한 인간을 한낱 마약의 숙주로 전락시킨다.- P199
인간은 왜 자신을 망치는 중독에 빠져드는 걸까? 호기심이 중독으로 이행하려 할 때 인간은 왜 멈추지 못하는 걸까? 사랑하다 생긴 중독, 슬퍼하다가 생긴 중독, 분노하다가 생긴 중독, 외로워서 생긴 중독,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생긴 중독... 나는 형사로 살면서 호기심도 병이 되고 감정도 습관이 되며 인간은 너무도 맥없이 자신을 망치는 것에 중독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201
어떤 사람들은 왜 자신이 겪은 가장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고통에 꽁꽁 묶인 채 마침내 그 고통의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걸까. 자신이 맞닥뜨린 고통의 근원과 직면하지 못하고, 왜 자신보다 약하고 낯선 존재에게 화풀이하듯 엉뚱한 분노를 표출하고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나락으로 빠뜨려버리고 마는가.- P216
가족이란 어찌 그리 본능적인 사랑을 눌러버릴 정도로 무겁고 버거운 감정을 안겨주는 걸까. 그토록 가까이 있는사람이건만 왜 내 아픔밖에 보이지 않을까. 우리는 왜 아픔을 합리화해야만 견딜 수 있을까. 도대체 인간의 이 나약함은 무엇 때문이고 어디까지일까.- 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