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숙함‘이냐 ‘새로움‘이냐. 사회적 가치 평가 기준으로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81세에 은퇴를 결심한 원로 만화가나, 대학원생들과 동등하게 토론을 벌이는 80대 석학의 사례가 보여주듯, 일본 사회는 장시간에 걸쳐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의 장점을 취하는 데에 더 적극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때에는 헛발질도 많다. 하지만 경험과 전문성이 중요한 분야에 있어서는 여전히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P151
일본의 원로 ‘현역‘들이 안정적으로 대활약을 펼치는 것은 그것대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이 진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일본 사회가 변화에 둔감하고 도전에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도 이런 점과 관계없지는 않을 듯하다.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와는 정반대이다. 한국의 원로들은 일찌감치 뒷전으로 물러나 ‘꼰대‘가 되거나, 아니면 ‘퇴물‘ 취급을 받곤 한다.- P153
일본 사회에서 매뉴얼이 이처럼 중요해진 배경에는, 거대한 정부 관료 조직이나 대기업의 조직 문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거대한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예측 불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래서 모두의 행동과 동선을 미리 약속하는 매뉴얼을 철두철미하게 갖추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삼가는 문화적 성향도, 매뉴얼주의가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데에 일조했다.- P157
경험을 온전한 교훈으로 후대에 전달하는 매뉴얼의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매뉴얼주의에 빠져 유연성을 잃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원칙주의에서도 배울 점은 있다.- P160
일본인은 왜 이렇게 다양한 장면에서 사과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일까? 사실 이 습관적인 사과의 화법에 상대방에게 진지하게 용서를 구하는 겸손의 정서가 깔려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정반대로 ‘남에게 빚지고 싶지는 않다‘라는 자기만족적인 생각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스미마센은 ‘빌린 것을 갚다‘라는 뜻의 동사 ‘스무‘의 부정형으로, 말뜻을 그대로 옮기면 ‘아직 빚을 갚지 못했습니다‘ 또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라는 의미이다. 혹은 이 말의 어원을 ‘깨끗하게 맑아지다‘라는 뜻의 동사(한자는 다르지만 동일하게 ‘스무‘라고 읽는다)에서 찾는 학자도 있다. 이 동사에 부정형 어미가 붙은 것이 ‘스미마센‘으로 ‘내 맘이 썩 편치 않습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P163
일본 문화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보답할 의무를 진다‘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손윗사람도 아닌 대등한 위치의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은 여간 부담스럽고 착잡한 일이 아니다. 언젠가 보답해야만 하는 채무가 발생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에도 신중해야 한다. 그에게 불필요한 채무를 떠안기는 행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은혜를 베풀지 않는 것이 더 사려 깊다.- P164
사과나 사죄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스미마센이라는말은 이런 본질적인 맥락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특정 행위에 대한 잘못을 인정한다기보다는, 공동체 일원으로서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자기 결의와도 같은 어법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일상생활에서 스미마센과 같은 사과의 화법이 자주 사용된다고 해서, 일본 사회에 사과나 사죄의 관행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과의 화법과 사과의 행위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P166
일본에서는 ‘패자를 배려하는 것이 승자의 품격‘이라는 생각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아베 총리의 사임에 대한 온정적 여론을 부추기고 있는 듯이 보인다. 건강 문제가 사임의 명분인 만큼 패배자라고 평가절하할 것까지는 아니어도 정치가가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지 못한 것은 문제이다. 하지만 미묘하게 패자의 입장에 놓인 채 공직을 떠나는 총리의 과오를 속속들이 들추어낼 필요가 있겠느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P171
젊은 오타쿠가 많아지고 팬질의 내용이 다양해진 만큼, 음침하고 폐쇄적이라는 사회적 편견도 많이 옅어졌다. 오타쿠를 자처하는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나만의 취향에 몰두하고 싶다는 고집스러운 욕망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획일적인 조직 생활, 주변에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완고한 질서 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오직 나만의 관심사를 마음껏 추구해 보는 것이야말로 오타쿠의 본질인 것이다.- P178
일본의 오타쿠 문화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박한 사회적 평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던 마니아들의 순수한 열정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자면 권력의 관심사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독창적인 팬덤을 꽃피울 수 있었다. 어떨 때에는 국가가 나서지 않는 것이야말로 도와주는 것이다. 대중문화처럼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핵심가치로 삼는 영역에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P180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이니까 겪는 차별적 상황에 대한 공분에 더해, ‘공기를 읽는다‘라는 미덕의 무게에 짓눌려 온 불편함을 사회문제로서 징벌하는 해방감을 준다. 바로 그 점이 한국 사회와는 다른 문화적 배경, 다른 젠더 감수성을가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아닐까.- P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