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중화 질서를 깨트리고 패권을 추구하면서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동아 공영권을 표방했다. 서구 열강의 공세에 동아시아가 협력해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이지만,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위한 수사에 불과했다. 일본은 조선 병합,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을 자행함으로써 그 허구성을 증명했다. 이런 역사는 전후 80년을 맞는 오늘날에도 동아시아에서 일본에 대한 불신의 근거로 작용한다.- P52
오키나와는 ‘평화헌법 보유국‘이자 ‘세계 최강의 군사국가인 미국의 강력한 조력자‘라는 전후 일본의 모순이 집약된 곳이며, 그 모순을 본토의 일본인이 직시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장소로 기능해 온 것이다.- P62
27년간의 미군 통치를 받았을 때나 일본으로 귀속된 뒤에도 미군기지라는 오키나와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 전체 면적의 0.6퍼센트에 불과한 오키나와에 일본 전체 미군기지의 75퍼센트가 집중돼 있고, 오키나와 본섬의 20퍼센트가 미군기지의 공여지로 제공되고 있다. ‘작은 바구니(오키나와)에 달걀(미군기지)이 너무 많이 담긴‘ 것이다. 오키나와는 미군 주둔으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 환경오염, 소음 공해 등 다방면에 걸쳐 고통받고 있다.- P63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는 하토야마 총리의 사임을 "헤이세이 정치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면서 하토야마가 충돌한 상대는 ‘대미 종속 체제‘였다고 논평했다. 하토야마의 기지 이전 시도에 일본 정치권은 물론 관료, 재계, 학계, 언론등 기성 권력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집중 포화를 퍼부었고,
하토야마는 "저놈은 우주인"이라며 인격모독까지 당했다. ‘국체‘나 다름없는 대미 종속 체제의 가공할 만한 힘을 보여 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P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