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에게는 특정 서비스업과 ‘저숙련 노동에 한해 일할 자격이 주어진다. 이로써 새로운 비자 제도는 조선족의 노동을 특정 직종에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들은 사면을 받고 새로운 비자를 발급받으면서 "배제를 통한 포용"을 경험하게 되었다.- P123
이처럼 사면을 계기로 조선족 이주자들은 미등록 노동자에서 ‘자유로운 이동 주체‘로 전환되었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연변은 여러모로 낯설었다. 급격한 도시화, 과도한 소비문화, 치솟는 생활비, 그리고 무엇보다 한족 인구의 급증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다.(중략) "연변은 여러모로 예전 같지가 않아요. 중국어를 못 하면 살기 힘들어졌거든요. 은행원, 판매원, 노동자, 식당 종업원 할 것 없이 어디를 가나 한족이네요. 저는 그게 싫어요." 내가 한국에서 만난 조선족은 대체로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 모든 소통이 한국어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한국이 ‘고향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고향, 연변에 돌아온 이들은 이곳을 낯선 고향으로 여기고 있었다.- P126
한국을 경험한 조선족들은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첫째, 한국이 단기간에 발전하고 성장한 것은강도 높은 노동 덕분이며 따라서 조선족도 한국 사람들의 노동윤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음식, 시간, 환대가 풍부하고 여유로운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시간 압박에 따른 스트레스로 사람들이 ‘일밖에 모르는‘ 비인간적 삶‘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연변에서의 ‘자유 시간‘은 중국이 좀더 살기 좋고 편한 나라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P129
옥순 씨의 발언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순환 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과도한 자유 시간‘이 ‘과도한 일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또다시 ‘과도한 비용‘으로 이어져 결국 비생산적이고 재정적으로 불안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돌아온 다른 조선족들로부터 연변에서 놓여 있던 소득과 지출이 불균등한 상황에 대해 자주 들었다. 연변에서는 ‘과도한 자유 시간‘에서 비롯된 소비, 즉 ‘과도한 일상‘이 존재했다. 돈은 한국에서 벌지만 소비는 연변에서 이루어지면서, 생산과 소비 사이에 뚜렷한 지리적 분리가 생겨났다.- P133
한국에서 돌아온 조선족들은 ‘일만 하며‘ 고독한 삶을 살던 당시에는 연변의 정겨운 분위기를 그리워했지만, 연변에서의 ‘과도한 일상‘에 드는 비용은 경제적·정서적 부담이 되었다. 옥순 씨의 친구들과 친척들은 그가 한국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여기며 식사나 잔치에 자주 초대했고, 후하게 돈을 쓰기를 기대했다. 옥순 씨에게는 이러한 기대가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왔다.- P134
한국 사회 곳곳에 조선족 이주자들이 존재하지만, 대중매체와 공적 담론은 이들을 가리켜 ‘기회주의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질이 낮은‘ 데다가 ‘노동 윤리가 부족한‘ 집단이라는 낙인을 찍곤 한다.- P140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이주해 연변 말투를 쓰지 않는 다음 세대 조선족이 한국 내 조선족 사회에서 점차 증가하고 있다.- P141
조선족 노동자들의 일자리 이동이 잦은 이유는일당제로 일하는 이들이 많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일자리는 쉽게 그만둘 수 있으며, 고용주 또한 노동자를 손쉽게 해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44
어느 조선족 공산당원이 말한 "이제 한국 돈은 맥이 없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조선족 이주자들은 한국과 중국 사이의 소득 격차가 줄어들고 한국 환율이 약세를 보이면서 코리안 드림은 쇠퇴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이동의 자유를 누리는 조선족은 여전히 많지만, 한국돈이 예전과 같은 힘을 상실하면서 코리안 드림은 위기에 처해 있다.- P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