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다 한국에 갔다"거나 "두 명만 모이면 한국 이야기가 나온다"는 말처럼, 지난 30년간 한국바람은 연변 어디에나 불었다.- P21
조선족 사회에서는 중국의 급격한 사유화 속에서 농민과 노동자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수단은 바로 ‘한국으로의 이주노동‘이라는 믿음이 오랫동안 자리해왔다. 1990년대 초 연변을 중심으로 회자되었던 코리안 드림은 이른바 ‘만원호‘라는 용어로 구체화되었는데, 이는 한국에서 단기간에 벌어들인 1만 위안(당시 중국에서 ‘큰돈‘을 상징하던 금액)으로 연변에 번듯한 새집을 장만한 가구를 일컫는다.- P21
지난 30년간 한국바람은 조선족의 삶을 크게 바꾸었을 뿐아니라, 연변에 남은 자들과 연변이라는 공간에도 깊은 변화의 흔적을 남겼다. 연변에는 누군가의 귀환을 기다리는 사람들, 한국에서 보내온 돈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 이주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이주자가 남긴 빈집과 땅과 일자리를 이어받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P22
‘떠나기‘는 단순히 종적을 감추거나 다른 나라로의 물리적 이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반복적 이동을 경험한 수많은 조선족에게 ‘떠나기‘는 생활 속 깊이 자리한 물질적·정서적 기반이자, 익숙해진 삶의 조건을 뜻한다.- P26
지난 30년간 한국바람은 조선족에게 희망찬 미래를 꿈꾸게 한 조건이자, 오래된 관계와 공동체를 무너뜨릴 만큼 파괴적인 위협으로 작동해왔다. 따라서 한국바람은 물질적 성공의 원천일 뿐 아니라, 조선족이 과거와 미래, 정치와 경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와 맺는 관계를 결합하는 상징적 수단이기도 하다.- P27
시장경제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 장거리 여행은 조선족에게 새로운 자기 발견의 기회를 안겨주었다. 소수민족 지역에서 성장한 조선족은 이 먼 여행을 통해 더 넓은 중국과 마주했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어 구사력 부족과 ‘진짜‘ 중국 문화에 대한 거리감을 실감하며 소수민족으로서 자신들의 지위를 깨닫기도 했다.- P32
조선족의 이주는 경제적 필요와 정치적 혼란에 놓인 다양한 이주의 흐름들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단순히 "이동성"의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이주의 한 형태", 즉 국민국가로부터 상당한 규제를 받게 된 대규모 인구 이동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P45
연변으로 유입된 송금액은 연변의 경관 및 민족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조화했다. 한국행을 택한 조선족 개인의 노동 윤리나 뚜렷한 목적 의식과는 별개로, 송금 의존형 경제는 환율과 국제 경제 요인에 취약성을 보인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조선족 노동시장을 강타했던 당시 상황을 보면 이러한 사실이 잘 드러난다.- P48
최근 들어 오랜 기간 한국에 체류했던 조선족 이주자들은 중국의 변화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데다가 한국으로 가지 않은 이들에 비해 자신들이 뒤처졌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한국바람‘에 휩쓸려 반복적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주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었다.- P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