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첫 연설에서 그가 언급한 유일한 실질적 정책 과제는 부패 척결이었다. 이는 누구나 환영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반부패 운동이 사실상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고, 핵심 자리에 충성파를 앉히며,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보호막이었다는 점을 완전히 깨닫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P381
그는 당시 주석이자 총서기였던 후진타오의 후계자로 이미 지명되어 있었다. 그러나 많은 중국인에게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유명 가수 펑리위안의 남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펑리위안은 시진핑보다 아홉 살 어렸고, 1989년의 유혈 진압 직후 톈안먼 광장에서 중국군을 위로하며 노래를 불렀던 인물이다.- P382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의 임기 동안 다소 약한 리더십 아래 다국적기업들이 마음대로 행동하고, 규제가 제대로 집행되지 않으며, 개혁이 정체되는 상황 속에서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비평가들은 이 시기를 비전도 실질적인 리더십도 없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다. 권력은 상무위원회 전반에 지나치게 분산되어 있었고, 이 때문에 ‘집단주석제‘라고 불리기도 했다. 행동에 나서지 못한다는 이유로 후진타오는 ‘전족을 한 여성‘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P384
2013년 1월 초 시진핑은 청중들에게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가 덩샤오핑보다는 마오쩌둥에 가깝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중략) "자본주의의 궁극적 소멸과 사회주의의 궁극적 승리는 반드시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칠 것입니다."(중략)
공개 석상에서 시진핑은 훨씬 더 온건한 이미지를 내세웠는데, 이는 근면과 국민적 자긍심을 통해 ‘중국몽‘을 실현하자는 메시지에 기반하고 있었다.- P385
시진핑은 집권하면서 "중국에서, 중국을 위해"라고 강조했지만, 애플은 그 부를 중국과 나누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P386
폭스콘은 결코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애플 성장의 주요 수혜자이자 실질적인 핵심 조력자였다. 많은 공급업체가 제품의 여러 세대를 이어가며 애플과 협력한 탓에 수익을 과도하게 의존했다. 그러다가 신제품 생산과 관련해 자신들의 기술이 필요 없어지면 애플이라는 고객을 잃고 파산에 이르렀다. 이러한 운명을 겪은 한 미국 공급업체의 CEO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편리하면, 당신을 단숨에 배신할 거예요."- P386
애플이 독립적인 평가를 의뢰한 결과, 점검받은 229개 공급업체 중 60퍼센트가 주 60시간이라는 최대 근무시간 기준을 지키지 않았으며, 약 절반은 유해 화학물질을 부적절하게 취급했고,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곳도 절반에 가까웠다. 쿠퍼티노가 이 보고서를 공개했을 때, 그들이 기대한 것은 미국 기업이 백기사 역할을 자처하며 공급망을 정화한다는 이미지였다. 거기에는 감독이 없으면 중국 공장들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생명을 위협하리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한 중국을 난처하게 했다.- P387
"캘리포니아주에서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조립하다"라는 문구가 있다. 애플을 상징하는 이 문구 또한 중국의 기여를 깎아내리는 표현으로 비쳤다. 중국은 전례 없는 규모로 세계적 수준의 산업클러스터를 조성했고, 그곳에서 수천 명의 숙련된 엔지니어가 정교한 기계를 다루며 애플 제품을 기능적으로나 미적으로 완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조립은 결코 이 파트너십의 본질이 아니었다. 이 문구는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처럼 보였으며, 중국을 제자리에 머물도록 규정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P387
애플의 중국 사업을 지키기 위해 쿡은 중국에서의 품질보증정책을 수정해,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 고객에게는 고장 난 아이폰을 새 기기로 교환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황뉴들에게 마치 하늘이 내린 기회와 같았다. 그들의 불법적인 사기 수법은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어 중국의 애플스토어들에는 아이폰 반품 전용 줄이 따로 생길 정도가 되었다. 차례가 되면 어떤 이주노동자들은 가방 가득 담겨 있던 아이폰을 꺼내 한 대씩 전부 새 기기로 교환하곤 했다.- P391
강경파들에게 아이폰은 젊은 세대의 물질주의, 개인주의, 서구에 대한 동경을 상징하는 존재였으며, 이는 그들이 억누르고 싶어하는 흐름이었다.- P393
애플은 2년 안에 모종의 팀을 꾸렸다. 그들은 자신을 ‘8인의 갱‘이라고 불렀다. 이 팀은 새로 영입한 세 명과 기존 애플 임원 다섯 명으로이루어졌으며, 중국 사업의 주요 부문인 운영 및 조달, 소매와 마케팅, 대외협력 그리고 애플 유니버시티를 모두 아울렀다. 그들은 중국에서 쿠퍼티노의 눈과 귀 역할을 맡았다. 8인의 갱의 첫 번째 주요 임무는 애플의 서사가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이었다. ‘애플은 왜 중국에 있는가?‘ ‘애플은 어떤 방식으로 이바지하고 있는가?‘ ‘애플은 이러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P395
중국은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지난 6개월 안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아예 가본 적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농담이 돌 정도였다.- P402
상하이에 거주하며 애플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그는 자국에서 외국인들의 활동을 중국공산당이 얼마나 철저하게 감시하고 추적하는지를 완전히 깨닫게 되었다. 중국공산당의 경제개혁은 자본과 서구 기업을 유입시켜 기술을 배우고, 이를 역설계해 복제한 뒤, 궁극적으로는 대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P409
대학 강사가 된 후 거스리는 학생들에게 서구 언론에 자주 그려지는 고정관념과 달리, 공산주의 국가 중국은 사실 미국보다 더 분권화된 국가라고 가르쳤다. 중국은 극단적으로 강화된 연방주의를 특징으로 했으며, 이는 소련 공산주의와도 크게 달랐다. 중앙정부가 정책의내용과 속도를 설정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성할지는 각 성, 시, 현이 알아서 정해야 했다. 이 체제는 경제학자 쉬청강이 "지역적으로 분권화된 권위주의 체제"라고 부르는 것으로, 성급 주지사부터 지방 간부까지 모든 관료를 포함하는 거대한 실적 경쟁체제였다.- P410
서구학자들은 중국을 자신들의 시각에 맞춰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중국 기업들이 이윤의 극대화를 동기로 삼는다고 보았으며, 1990년대 중반의 노동 기준 법제화와 같은 조치들도 더 높은 효율성을 추구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거스리는 중국 기업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서구의 관행을 모방하는 이른바 ‘될 때까지 흉내 내기‘로 보았다. 공장주는 겉으로 좋아 보이기 때문에, 또 더 많은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동 기준을 도입했다. 이러한 동기의 차이는 미묘할 수 있으나, 그 파급력은 매우 컸다. 중국은 서구를 흉내 내고 있었지만, 많은 이가 생각하듯 실제로 서구화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P411
이 통찰로 거스리는 중국의 행정체계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는 중국공산당의 역할이 점차 소멸하리라 예측한 대부분의 사람과 달리, 그것이 진화하고 있다고 보았다. 정부 관리들은 더는 개발을가로막는 장벽이 아니었으며, 지역 및 외국 기업과의 관계에서 마치 벤처투자자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즉 지분을 일부 확보하고, 이사회에 참여하며, 성장을 촉진하는 데 주력하는 식이었다.- P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