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이후 중국공산당은 노동자, 농민, 군인의 덕목을 가장 중요시하는 좌경적 시기와 지식인, 회사원, 상점 주인, 기타 ‘소부르주아‘ 시민까지 확대한 포괄적 개념의 ‘노동 대중(勞動群衆)‘을 강조하는 보수적 시기 사이를 왔다갔다했다. 마오쩌둥의 당내 경쟁자들이 훨씬 더 절충적인 경제정책을 용인하거나 장려하던 시기에 계급투쟁을 잊지 말라는 요구는 마오쩌둥의 좌경주의를 상징했다.- P27
문화대혁명의 11년간은 일반적으로 일관된 시기로 취급되지만 우리는 이를 서로 매우 다른 두 단계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중략) 중국의 미완의 혁명인 문화대혁명은 대중 동원의 첫 단계에서 마오쩌둥의 경쟁자들을 권력에서 성공적으로 축출했다. 문화대혁명의 두 번째 단계는 1968년부터 1976년까지 지속되었는데, 협상과 무력으로 조반 세력들을 통제하면서 새로운 마오쩌둥주의 질서를 공고히 했다. 혁명 뒤에는 억압이 뒤따랐다. 재조직된 당은 1966년의 반란군을 진압했다.- P31
문화대혁명의 원인에 대해서는 (1) 정치 엘리트 내부의 갈등, (2) 중국 사회 내부의 긴장, (3) 중국의 국제적 위치 등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P43
문화대혁명이 한창 진행중일 때 마오쩌둥을 혁명 대중을 위해 싸우는 위대한 전사로 묘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마오쩌둥 사후, 특히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마오쩌둥은 자신의 이기적인 야망을 위해 혼란의 씨앗을 뿌리는 데 혈안이 된 괴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P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