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자가 쓴 쉼표 하나, 숨 한 번까지 제대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고고한 비기가 아니라 쓸데없는 신경증일 수 있다는 것, 불필요한 단어를 떼어내고 적당히 정리된 문장으로 속도감 있게 상대의 말을 전달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게 더 돌돌한 방법이라는 것.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우울의 겹이 한 층씩 덧대졌다. 이런 시대에 통역사의 노동이란 쓸데없는 집념과 열정의 산물인가 싶었고, 하루에도 네댓 번씩 밀려드는 자괴와 열등감에서 나는 좀처럼 발을 빼내지 못하고 있었다.- P195
다만 그들과의 작업 후에, 나는 내게 맞는 일이 통역뿐임을 깊이 깨달았다. 문장 안에서 나는 평온함을 느꼈다. 반대로 문장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야 할 때 민감해졌다. 앞으로는 어쩌다 실수로 그런 걸 맡아도 내 의견 따위를 밖으로 꺼내는 과오는 저지르지 말자고, 내 일이 문장 안에 갇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P210
난데없이 울컥했다. 어째서 욕구 없이 평온한 삶을 누리겠다는 내게 자꾸 그게 문제라고 하냔 말이다!- P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