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영국성공회 사제인 존 스토트 신부님 교회론 책이다. 존 스토트 신부님은 역시 영국성공회 사제인 알리스터 맥그래스와 함께 세계 복음주의를 주도하고 있는 분이다. 존 스토트 신부님은 영국 런던에 있는 성공회 제령교회(All Souls Church) 관할사제로 30년간 복무했다. 성공회 안에는 크게 예전주의(고교회파), 복음주의(저교회파), 자유주의(광교회파)의 전통이 공존한다. 예전주의 전통에서는 예전복구를 통한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옥스포드운동(이른바 Anglo-Catholics)이 유명하고, 복음주의 전통에서는 감리회를 창시한 존 웨슬리 신부의 회개운동이 돋보이고, 자유주의 전통에서는 존 쉘비 스퐁 주교, 돈 큐핏 신부(많은 책이 번역되어 있음) 등과 같은 급진적으로 진보적인 사상가들이 많이 있다. 대한성공회 안에도 예전주의, 사회참여, 성령운동 등에 대한 다양한 관심이 공존하고 있다. 이 책의 부록으로 실린 "나는 왜 여전히 영국 성공회 교인인가?"라는 글을 먼저 읽어보면 이 세 분파간에 있는 갈등을 스토트 신부님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존 스토트 신부님은 성공회 복음주의자로서 세계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입지전적 인물로 수십년 동안 활동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수많은 책들이 앞다투어 번역되고 있으며,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깊은 존경을 받고 있는 분이다. 그런데뜬금없게도 이 분이 성공회 사제이다. 한국에서 성공회의 교세가 워낙 약하기에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그는 분명히 영국성공회 사제로 사목을 하고 있는 분이다.
이 책은 성공회 복음주의자의 교회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 굳이 "성공회" 복음주의자의 교회론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성공회 사제이긴 때문만은 당연히 아니다.
1.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의 일치의 상징이자, 영국성공회의 수장은 캔터베리 대주교이다. 전임 제102대 캔터베리 대주교 로버트 런시가 제3회 전국 성공회 복음주의 대회(National Evangelical Anglican Congress) 축전에서 말한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로 이 책은 시작한다.
현재 영국성공회 안에서 일고 있는 복음주의의 부흥이 영속적인 영향력을 가지려면, 교회론에 더 분명하게 주목해야 합니다.
-제3회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 대회, 전임 캔터베리 대주교 로버트 런시의 축전 中-
복음주의는 교회의 전통보다는 성서를, 보편교회보다는 지역교회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 전해오고 발전하는 전통과 교회의 보편성과 일치성을 유지하는 부분에서 취약하다. 런시 대주교의 말도 이런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은 대주교의 우려에 대한 성공회 복음주의자의 답변이다.
2. (1) 성공회 신학의 핵심은 바로 성육신이다. 성육신은 하늘과 땅이 입맞추는 사건이며, 하느님이 인간과 만나는 사건이다. 하느님의 거룩과 세속, 정신과 물질, 하늘과 땅이 하나되는 사건이다. 성공회 신학의 핵심이 바로 이 성육신이다. 성육신의 교회론적 의미는 교회는 항상 사회 속에서 사회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존 스토트 신부님이 전개하는 교회론의 핵심도 성육신이다. (2) 또 성공회 신학은 영국 종교개혁 시기부터 극단을 지양하고 중용을 선택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로마교회와 개신교회의 양극단을 지양하면서 양자의 장점을 포괄하는 방식의 "제3의 길"이다. 그래서 성공회를 "reformed catholic church"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중용의 길"을 라틴어로 Via media라고 하는데, 이는 영국 종교개혁 신학자 존 주얼(John Jewel; 본 책에도 언급됨)이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이 용어가 한국에서는 성공회를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존 스토트 신부님의 이 책을 잘 보면, 먼저 양극단을 제시하고 그 양극을 지양하는 방식의 해법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논거를 전개하는 부분이 많이 등장온다.
3. 지속적으로 전현직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의 말들을 굉장히 많이 인용하고 있다. (현직 제103대 로완 윌리암스[Rown Williams], 102nd Robert Alexander Kennedy Runcie 1980, 100th Arthur Michael Ramsey 1961, 99th Geoffrey Francis Fisher 1945, 98th William Temple 1942 등의 말들) 캔터베리 대주교라 하면 그 상징적 위치 때문에 그의 행위와 언설들은 성공회 안에서 상당한 권위(적어도 여러 모양으로 회자될 권위)를 가지고 있다. 존 스토트 신부님은 캔터베리 대주교의 말들을 인용하고 자신의 복음주의 입장 안에서 해석하면서, 성공회 복음주의의 입장이 성공회 안에서 충분히 인정되고 있고 가치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람베스 회의(Lambeth Conference)라 불리는 세계 성공회 주교회의, 성공회 39개 신조, 성공회 공동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 등의 내용을 광범위하게 인용/참조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이렇듯 과하다 싶을 정도로 스토트 신부님 자신의 성공회 배경과 성공회의 역사와 신학과 사목을 염두에 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한 장이 멀다하고 "성공회"라는 단어가 튀어 나온다. 아마 성공회 출판부에서 나온 책도 이만큼 성공회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은 일차적으로 영국성공회라는 특수한 상황을 인식하면서 성공회 복음주의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쓴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다분히 성공회적이기 때문에, 이 책의 역자는 원서의 이 특징을 보다 깊이 고려했으면 하는 마음이 많이 든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부분들이 대표적인 오역이다.
1. 존 스토트 목사 : 대한성공회의 공식용어에 따라, 존 스토트 사제 혹은 존 스토트 신부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대한성공회의 성서 공인번역본은 공동번역 성서이다. 그러므로 대한성공회 신자는 하느님 호칭을 공식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범개신교단을 위한 책이므로, 하느님이라고 번역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하지만 성공회 성직자에 대해서는 대한성공회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들을 사용해야 할 당위는 분명히 있다. 이 책에는 "교구목사"라는 표현도 등장하는데, 이도 "관할사제"로 수정하는 것이 옳다. 도대체 교구목사라는 표현을 쓰는 교단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교구라는 표현은 성공회, 천주교, 정교회 등에서 채택하는 용어들인데, 여기에 또 목사라는 단어를 붙이니 어색하기 그지 없다.
2. 미국감독교회(ECUSA: the Episcopal Church of the U.S.A.) : ECUSA는 성공회의 미국식 이름이다. 성공회의 영국식 이름은 anglican church이다. 그런데 anglican이라는 단어에 인종과 민족적 색채가 강한 이유로,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과 필리핀처럼 미국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은 anglican 대신에 episcopal을 사용한다. 그래서 성공회를 지칭할 때, "anglican/episcopal"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 일본, 홍콩 등의 한자문화권 아시아 국가에서 성공회(聖公會; holy catholic church)는 anglican/episcopal church의 아시아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ECUSA는 세계성공회공동체의 일원으로, 미국성공회로 번역하는 것이 명백히 타당하다.
3. 살리스베리(Salisbury) : 솔즈베리가 옳다. 많이들 하는 실수이다. 솔즈베리는 성공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다.
4. "총고해, 송영, 겸손히 나아가는 기도" 등과 예전용어들은 아주 오래된 표현 혹은 성공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표현 혹은 잘못된 표현이다. (원문을 확인하면, 보다 명확히 알 수 있겠지만, 현재는 원문을 확인할 수 없다.)
5. 올 소울즈 교회 : 성공회 제령 교회. all souls의 번역어는 "위령"이고, 특별히 천주교나 정교회와 구분하기 위해 "성공회"라고 명기해 주는 것이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이렇게 한글이름이 있는데 왜 영어음을 그대로 쓰는지 모르겠다. St. Helen Church를 세인트 헬렌 교회라고 하는 것보다 성 헬레나 교회라고 하는 것이 더 친절하고 정확한 번역이다. 굳이 번역을 하지 않고 "올 소울즈 교회"라고 쓰는 이유는 개신교 신자들이 All Souls Day (성공회: 모든 별세자의 날, 제령일 천주교: 위령일)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무지'와 '반감'을 전혀 건드리지 않으려는 번역자의 의도 때문이다. 교회력에 따르면, 11월 1일은 모든 성인의 날(All Saints Day; 제성일), 11월 2일은 모든 별세자의 날(All Sould Day)이다. 모든 별세자의 날은 개신교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신적이거나 반성서적인 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동료 인간의 순수한 사랑과 동정의 마음을 신앙 안에서 표현하는 날이다. 대한성공회 공동기도서에서 정한 모든 별세자의 날 본기도는 다음과 같다.
영원하신 주 하느님, 모든 생명을 지으시고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나이다. 모든 별세한 이를 위해 기도하오니, 그들에게 영원한 빛과 평화를 주시어 주님의 은총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상통하며 마침내 영광 속에 부활하여 우리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본문: 구약-지혜서 3:1~9, 성시-시편 23편, 서신-로마서 5:5~11, 복음-요한5:19~25)
존 스토트 신부님이 속한 성공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교회력을 통해서 신앙과 인생을 성찰하는 교단이다. 모든 별세자의 날은 참으로 의미있는 날이다. 특별히 나는 이 날에 압제와 폭력 속에서 죽어간 많은 민중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존 스토트 신부님은 위령 교회의 뜻을 나름의 방식으로 긍정하고 있다(199쪽). 존 스토트 신부님의 책에서 성공회 요소를 쏙 빼서 다른 개신교인들에게 전혀 거부감이 없는 책을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책을 읽으면서 다른 교회 전통을 익히고 교회 전통의 다양성을 배우도록 돕는 것이 한국기독교의 성숙도를 증진시키는 올바른 길이다. (마찬가지로, 존 스토트 신부님의 책 못지 않게, 헨리 나웬, 토마스 머튼 등의 책들이 기독교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지만, 이들 책들에서도 천주교 전통이 완전히 탈색되어 개신교화된 느낌이다. 성사적, 관조적, 예전적, 전통적 강조점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