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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셀, 안녕.
먼저 아줌마 소개를 해야겠지?
아줌마는 너 만큼이나 잔소리를 싫어하는 여섯 살 꼬맹이를 둔 엄마란다.

오늘 아침에도 늦잠 자는 꼬맹이에게 빨리 일어나라고 잔소리를 좀 했지.
물론 네가 짐작하는 대로 일어나서 밥 먹고 양치질도 하라고 그랬다.
우리집 꼬맹이도 벌써 일주일 넘게 기분이 나쁜 모양이다.
하지만 아줌마는 맹세코 지나친 간섭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단다.
문제는 꼬맹이가 엄마의 말을 '또 잔소리'하는 걸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지.
이건 꽤 심각한 문제란다. 꼬맹이는 겨우 여섯 살인 걸.

푸셀, '잔소리 없는 날'은 당돌하긴 했지만 재미있는 제안이었어.
사실, 고백하자면 아줌마도 너만 했을 때 그런 상상을 자주 하곤 했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이었단다.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야.)
아줌마에게도 '잔소리 없는 날'이 주어졌더라면 글쎄...
일단 너처럼 일찍 일어났을 것 같진 않구나.
아마도 실컷 자고 일어나서 씻지도 않고 늑장을 부렸겠지.
아예 학교 수업도 빼 먹었을 지 몰라, 후후후.
아, 그런 상상은 불안하면서도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콩콩 뛰는 일이었지.

그런데 푸셀.
막상 '잔소리 없는 날'을 지내보니 어땠니?
파티에 초대할 친구를 찾으러 다닐 때,
네 표정으로 봐선 그렇게 즐거워 보이지만은 않더구나.

더욱이 술주정뱅이 아우구스트를 부축하고 집에 들어오는 장면에서는 '어이쿠!'
술취한 사람이 위험한 줄 몰랐다니... 그래, 바로 그거야!
너희만할 땐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아도 사실 모르는 게 더 많은 법이거든.
올레를 보면 알 수 있잖아. 올레가 그렇게 겁쟁이인 줄은 꿈에도 몰랐지?
용기있고 지혜롭고 온갖 아이디어로 번뜩이는 그 대단한 올레가 세상에나 귀신을 겁내다니.

어쨌든 무사히(?) '잔소리 없는 날'이 끝나고 넌 메르켈 선생님께 직접 편지를 썼지.

'종경하는 메르켈 선생님!
숙제를 못해서 제송합니다.
오늘 우리 집은 '잔소리 없는 날'이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푸셀 올림.

추신 :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추신2 :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번일 겁니다.'

푸핫, 아줌마는 추신2에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말았단다.
그렇게 혼이 나고서도 아직도 '잔소리 없는 날'에 미련을 못 버리다니.
하긴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번일 거라는 말에 부모님도 웃으며 동의하실 지 모르겠다.

푸셀, 그런데 아줌마가 삶의 비밀 하나 알려줄까?
'잔소리'가 애틋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이들도 있다는 걸.
바로 그 지긋지긋한 '잔소리'의 가장 밑바닥엔 사랑과 관심이 녹아 있다는 걸.
그래서 당장은 듣기 싫은 소리이지만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큰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는 걸.
세월이 흘러 나 역시 내가 들었던 똑같은 '잔소리'를 하게 된다는 걸.
그리고... 진심어린 '잔소리'는 '큰소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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