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 제목이 끌렸다. 도대체 이 책의 정체는 무얼까.
학원 앞이거나 방 안, 지하철일 수도 있겠다. 아이스크림 가게 혹은 버스 안, 그 어떤 곳도 무방하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을 훔쳐보다 어느새 난 열아홉의 시간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열아홉, 나 역시 지독한 정체 속에 갇혀 있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늘 낙원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지만 지름길은커녕 그 곳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씩씩하게 직진하는 것 뿐.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며 길 위에서 편지를 쓰곤 했다. Y나 L처럼 고백하듯 수줍게 나의 S에게, 때로는 M에게. 그러면 그들은 기꺼이 종착점을 알 수 없는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그들 역시 방황하는 청춘이었기에 티격태격하면서도 우린 함께 걸었다.
청춘의 시간은 엄마 손을 놓친 어린 아이(미아)처럼 불안하고 폭우 속에 던져진 것 마냥 혼란스럽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사방이 꽉꽉 막힌 정체된 시간 속에서도 어느 날 문득 나의 본모습과 마주하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치 드라이아이스처럼 승화하는 순간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갔던 것 같다.
정체라는 정체 모를 책 속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낙원, 미아, 승화, 정체, 폭우를 읽고 작가의 말까지 꼼꼼하게 읽고서야 이 책의 정체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음절로 된 단어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 속에서 조금씩 아프게 성장하고 있는 청춘들이 불쑥불쑥 고개 내미는 게 보였다.
살아가면서 어찌 열아홉의 시간에만 폭우가 쏟아질까. 열아홉이 지나도 우린 자주 미아가 된 듯 막막할 것이다. 여전히 낙원을 찾아 헤맬 것이며 물론 시시각각 지독한 정체 속에 발이 묶일 것이다. 하지만 열아홉 때만큼 두렵진 않을 것 같다. 정체된 시간 속에는 자신의 정체와 맞닥뜨릴 수 있는 행운의 열쇠가 숨겨져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임태희 작가의 글을 읽고 오랜만에 나의 청춘을 돌아보았다. 물론 아직도 아이처럼 자주 혼란스럽고 낙원으로 가는 길목 어디쯤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는 늘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뜨겁게 뛰는 청춘임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