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곧게 선 나무 , 조정래를 만나고
몽당연필 2003/08/1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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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글 쓰냐? 가끔 안부 전화를 하는 선배의 지나가는 인삿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처음 내 발로 찾아간 글쓰는 동아리에서 나는 글보다는 글씨를 더 많이 썼었다. 빨간 물감과 파란 물감 따위로 글이 아닌 글씨를 쓰던 그때도 나는 뻔뻔스럽게 사람들을 만나면 글을 쓴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조정래 작가의 <누구나 홀로 선 나무>를 읽고 난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식해서 용감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꿈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또, 두려운 작업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참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한 조정래 작가의 첫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는 그래서 아마도 내 생애에서 가장 소중한 책이 될 것 같다.
부끄럽게도 나는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전 <한강>을 읽었다. <한강>을 읽고 비로소 조정래라는 작가에 눈을 떴다. 사설학원에서 8년간이나 국어를 가르치면서 나는 조정래라는 작가와 작품의 제목만을 겨우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강>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왜 일찍이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읽지 않았는지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그러다가 작가가 처음으로 산문집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산문집을 구입했던 것이다.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는 조정래 작가를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그가 글을 쓰는 태도는 말 그대로 올곧게 선 한 그루 나무였다.
온 몸을 바쳐 글을 써 온 작가 조정래. 그가 빛나는 이유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끝내 진실만을 써 왔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몇 번이나 읽으려고 하다가 1권에서 끝내 포기해버린 <태백산맥>이 그렇게 힘들게 쓰여진 것인 줄 알았다면 나는 그처럼 경솔하게 책을 덮지는 않았을 것이다. 직접 발로 뛰며 자료를 모으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적 진실을 말하려고 밤낮 없이 연필을 놓지 않았던 작가의 모습을 나는 산문집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자식을 많이 둘 수 없어 외아들 하나를 둔 작가는 작품이 이렇게 팔릴 줄 알았다면 자식을 두엇 더 둘 것을 그랬다고 너털 웃음을 웃는다. 하나 자식이지만 아주 엄중했던 작가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일일이 배껴 쓸 것을 명했다. 아비의 노고를 몸소 느껴보라는 것이다. 나 역시 작가의 글을 한 번 그대로 배껴 써 볼 생각이다. 아직 책은 선택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일을 꼭 해내리라 다짐한다.
산문집에는 작가의 문학관과 작품 탄생 배경 외에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대목이 많다. 특히 1, 2장은 이 산문집의 전체적인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얼마나 따스한지, 정확한지, 구체적인지 미래지향적인지 느낄 수 있다. 또한 작가의 날카로운 역사의식은 날이 갈수록 '나'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맴도는 근시안적인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나는 작가와의 대담을 읽으며 굵직굵직하고 거대한 작품을 쓴 작가의 소탈한 이면을 보았다. 어쩌면 가장 여리고 세심한 사람만이 진실을 올곧게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문득 든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다. 누구나 홀로선 나무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잔뜩 치장한 모습이지만 넓게 자리만 차지하고 서 있지는 않은지, 남에게 기대야만 자랄 수 있는 것은 아닌지, 타인의 설 자리까지 뺏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그 누구보다 올곧게 우뚝 선 나무, 조정래 작가를 만나고 돌아서며 나는 나의 나무를 다시금 되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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