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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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꽂이
살아가면서 때론 무어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것들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차근차근 되돌아보면 그리 바쁜 것도 아닌데 여유없이 후다닥 지나가버리는 일상 속에서 가뭄의 단비처럼 뭉클한 감동을 받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경기도 좋지 않고 날씨까지 구질구질한 날이면 더욱 따스한 이야기가 그리워진다.

모처럼 친정어머니가 딸네집에 오셨다. 우리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다니기 위해서다. 아무리 편안하게 해 드리려고 해도 불편해하시는 모습이 역력하다. 평소에 신문이나 잡지 등 읽을거리를 즐겨찾으시는 어머니는 딸네집의 커다란 책장 앞에서 마땅히 읽을 꺼리를 찾지 못하신다. 하긴 반은 20개월 손자녀석 그림책이고 반은 봐도 모를 전공서적들이니 오죽하실까. 평소에 불효가 늘 마음에 걸렸던 나는 아들과 어머니가 사이좋게 낮잠자는 틈에 집앞 도서대여점에 들렀다.

한눈에 어머니가 좋아하실 책이란 생각을 하며 망설임없이 빌려온 책이 바로 <TV동화 행복한 세상>이다. 가끔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기 위해 책을 읽으시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그만큼 어머니는 감동적인 책을 좋아하신다. 나는 감동이 마구마구 준비되어 있는 이 책은 꼭 우리 어머니를 위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읽기 위해 이 책을 빌리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특별히 할 일도 없었던 나는 낮잠 대신 평소에는 결단코 읽지 않았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들내미 그림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따스한 파스텔톤의 삽화가 정겹다. 자세히 보니 가끔씩 TV에서 봤던 장면들이다. 그러고보니 몇 개의 내용은 무심결에 흘려보았던 내용 그대로이다. 이 책이 그렇게 잘 팔린다니 조금 씁쓸해진다. 책 자체는 아주 예쁘고 아름다운 내용이지만 내가 보기엔 초등학생 도덕책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따스한 사랑과 정에 목말라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며 이 책을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실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이미 세상에 물들고 모든 걸 비판적으로만 보려는 나에 비해서 어머니는 아마도 이 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동하실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철없는 딸이 어머니께 조그만 감동 하나를 선물하게 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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