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을 배운 지 한 달 남짓 되었다. '보이는 것을 그리는' 시간을 통해 깨달은 건 '제대로 본다'는 것의 어려움과 본 것을 종이 위에 '제대로 옮긴다'는 것의 어려움이었다. 외부의 대상과 나 사이, 그리고 내 안의 시각과 손의 운동신경 사이는 무척이나 멀고 팽팽하여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금새 균형이 무너졌다. 그동안 보거나 움직였다고 생각한 행위들이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대충 한 것인지 새삼 느꼈다.
그후 드로잉북을 보는 게 더 좋아졌다. 무심하게 보아온 그림들이 세심하게 관찰하고 많은 품을 들인 결과였음을 알겠다. 작가가 정성을 기울여 그린 대상이, 그가 사랑하는 대상이라는 것도. 『다가오는 식물』은 마음에 머문 식물들의 이름을 하나씩 알아가며 그 매력을 몇 년째 그려온 작가의 식물 드로잉 모음이다. 예쁜 판형의 책을 펼치면 모양도 색깔도 이름도 다채로운 식물들이 공존하고 있는 초록 정원으로 초대된 기분이다.
드로잉에는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법. 꽃송이 안의 꽃술, 가느다란 줄기, 이파리와 잎맥의 형태와 빛의 영향으로 인한 미묘한 색채 변화가 꼼꼼하게 표현되어 제목 그대로 식물들이 꿈틀대며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백에는 평화롭고 담담한 단상이 함께 실려 식물이 못다한 말을 전하고 있다. 짧지만 여운이 느껴지는 글들이다.
그림을 곰곰히 보다보니 문득 내가 키우고 있는(아니, 주인의 방치로 알아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얘가 원래 이렇게 예뻤나?! 그리고도 싶어진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표정, 분위기, 줄기의 휘어짐, 잎의 방향과 막 돋아나고 있는 새잎, 시들어가는 모습까지. 어느새 식물의 말없는 평화가 내게 다가오고 있다.
선인장 /
바꾸려 하지 않아도
같이 있으면
나를 나답게 하는 좋은 친구들이 있다.
방크시아 /
행복과 기쁨은 언제 시작되는 걸까.
행복이나 즐거움이 누군가를 통해서가 아닌
나로부터 시작되었으면
내가 그런 좋은 기운을 가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