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출현은 올해의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던 바둑 게임에서 알파고가 4대 1로 이세돌 9단을 꺾은 순간은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 기술 앞에서 인간 존재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일상과 먼 이야기도 아니다. 검색 엔진은 이미 사용자가 입력한 검색어, 기존에 클릭했던 정보들을 수집, 분석하여 사용자 맞춤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두 사람이 같은 검색어를 입력하더라도 그들이 접속한 장소나 평소 드나든 웹페이지, 선호하는 정보가 다르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내놓는다. 또 같은 뜻의 단어라도 영어로 쓰느냐 일본어로 쓰느냐에 따라 검색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감각은 환상이며 우리는 구글이 통제하는 틀에 걸러진 정보만 볼 수 있을 뿐이다. 현실에 강하게 매여 있을수록 말, 경험, 사유도 한정적으로 흐르기 쉬운데 인터넷으로 인해 이러한 경향성이 더욱 강화되고 고착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가 주장한 '약한 유대관계'라는 개념을 빌려 '약한 연결'을 제안한다. 깊이 아는 사람보다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사람처럼 약한 유대관계를 통해 이직한 사람들의 직업 만족도가 더 높았다는 그라노베터의 연구 결과처럼, 알지 못한 채 생기는 '우연한' 일이 오히려 긍정적인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저자는 환경과의 강한 연결을 벗어나 '약한 현실' 만들기, 즉 '여행'으로 환경을 바꿀 것, 새로운 사물을 발견하고 새로운 감각을 느끼고 새로운 만남을 가질 것, 그리하여 구글에 예측되지 않는 새로운 검색어를 입력함으로써 앎을 새롭게 확장할 것을 권한다.
자국과 해외 여러 나라에서 구글을 검색한 사례과 현지의 실상을 몸소 경험했던 감각을 풍부하게 소개하면서 그는 '신체'를 이동하는 것, '말'이 아닌 '사물'을 '체험'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것이야말로 기호라는 추상의 바다를 떠다녀야 하는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몸을 쓰고, 사물을 직접 체험하며, 동물적인 감각을 느끼는 일. 인공지능과 인간의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그 지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감각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기호,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네트워크 환경에 대한 비평과 인간 존재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담은 묵직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쉽고 가벼운 에세이처럼 술술 읽힌다. 철학에 관심 없는 독자들을 위해 작정하고 자기계발론처럼 썼다는 저자의 의도 그대로다. '인터넷', '구글' 같은 단어들을 살짝 들어내면 정말이지 인생론과 다름없다. 장소를 바꾸면 우리의 욕망과 말과 생각이 바뀐다는, 적어도 그럴 가능성이 생긴다는 그의 권유는 얼마나 상쾌하고 즐거운가. 우리가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라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라는 것, 그러므로 자아 찾기 하느라 자기 내부로 파고들 게 아니라 가벼운 몸으로 이동해 스스로 환경을 바꾸라는 것, 이것저것 재지 말고 우연에 몸을 맡길 것, 더 강한 현실을 만들기 위해 약한 현실을 도입할 것.
'약한 연결'이 달리 말해 '미지'의, '예측 불가능한' 현실에 뛰어드는 일이라면 마침 2017년 새해가 우리 앞에 도착해 있는 것은 근사한 우연인지도 모른다. 새해에는 더 가볍고 씩씩한 여행자로 움직여볼 일이다.
약한 유대관계는 노이즈로 가득하다. 이 노이즈가 바로 기회라는 것이 그라노베터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현실의 인터넷은 그런 노이즈를 배제하는 기법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지금의 인터넷은 ‘파티에서 우연히 옆에 앉게 되어 속으로는 귀찮다고 생각하면서 이야기하는 사이에 누군가의 소개를 받는‘ 상황을 실현하기가 매우 힘들다. 귀찮다고 생각한 순간 바로 ‘차단‘하거나 ‘뮤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약한 유대관계를, 우연한 만남을 찾아야 할까? 바로 현실이다. 신체의 이동이고, 여행이다. 인터넷에는 노이즈가 없다. 따라서 현실에 노이즈를 도입한다. 약한 현실이 있어야 비로소 인터넷의 강함을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