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카프카의밤
  • 안으로 멀리 뛰기
  • 이병률.윤동희
  • 13,500원 (10%750)
  • 2016-08-08
  • : 1,995

  이것은 일찍이 본 적 없는 인터뷰집이다. 인터뷰이 이병률은 그를 향한 질문들에 말로 시를 짓듯, 때로는 직유로, 때로는 은유로, 때로는 명확한 서술로 답하며 내면의 풍경을 그려낸다. 그 풍경들이 다채롭고 풍성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병률이라는 사람이 기승전결로 일목요연하게 설명되거나 정의되지 않고, 매 순간 포착된 느낌과 분위기 그 자체로 존재하는 덕분이다. 마치 그의 여행 방식 같다. 아무 계획 없이 당도한 낯선 여행지에서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며 서서히 그곳을 알아가는 것, 그러다 예기치 않게 누군가 만나거나 스치거나 헤어지는 것, 기분 좋은 일과 맞닥뜨리는 것, 당혹스럽거나 슬퍼지기도 하는 것, 그러나 기억할 만한 아름다움을 반드시 품고 돌아오는 여행을 하는 것.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병률이라는 사람이 안에 품고 있는 수많은 갈래의 길, 이질적인 풍경들이 잔뜩 숨겨진 에움길들을 기쁜 마음으로 걷게 된다. 

  한편 독자는 질문하는 이의 태도 또한 특별하다는 점을 알아차릴지 모른다. 그의 질문은 지금 막 사랑에 빠진 사람이 연인에게 던질 법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어린 시절, 꿈, 연애 경험, 친구들, 소중한 가치, 아끼는 물건, 결정적인 순간, 일상, 좋아하는 것(사람)과 싫어하는 것(사람), 친해지는 법, 일과 돈 등등. 심지어 어떤 스킨을 쓰는지 까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 막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가려는 이의 태도 답게 조심스럽기도 하다. 낯설고 사랑스러운 타인 ― 심지어 자신에게 '취급주의' 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싶어하는 이 ― 을 향해 다가가는 그의 몸짓은 끈질기면서도 세심하고 사려깊다. 특히 이병률의 대답을 그가 쓴 시 구절로 더듬어가며 이해하는 대목들은 한 사람, 그 넓이와 깊이를 총체적으로 그려내려는 지극한 정성스러움이다.

 

  그래서 이 책은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이 묻고, '사람 무지 좋아하는' 한 남자가 진지한 답변으로 기꺼이 그 사랑에 응답하는 과정, 그리하여 하나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일을 기록한 것이다. 그 기록을 읽어내려가는 이는 질문과 대답 사이에서 빛나는 문장들을 발견하고 책을 덮은 후에도 마음에 이는 바람을 느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대화집은 시집을 닮았다. 일찍이 본 적 없는 인터뷰집이라는 느낌도 그래서일 것이다.

 

- 사랑을 잊기에 그만인 곳이 핀란드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가면 좋은 곳이 어디인지도 이병률은 친절하게 말해준다. 그가 쓰는 스킨이 뭔지도.

왜 시인이 되셨어요?

(······) 사랑이 쉽지 않아서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말이 안 되고 단어 동원도 안 되죠. 그래서 우리는 유독 밤에 시를 쓰는 건지도 모르지요. 막막한 밤에 할 말을 찾고,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 시인은 그래서 생겨난 직업이니까요. 그래서, 시인은, 사랑입니다. (······)

글을 쓰는 건 사는 것하고 똑같아서 `안으로 멀리 뛰기` 같은 걸 수도 있어요. 글을 쓰는 건 행복한 일이에요. 외로운 일이지요. 미친 짓이구요. 그러다 죽을 만큼 기쁜 일이구요.
사랑을 끝내려고 떠나기도 한단 말인가요?

사랑을 잊기에 그만인 곳이 있습니다. 알려드릴게요. 핀란드, 겨울의 국도예요. 눈이 덮여 있어서 길이 분간이 안 되는 길 양옆으로 침엽수들이 눈을 뒤집어쓰고 있어요. 핀란드 설국의 풍경은 오로지 그것뿐입니다. 차 안에서 시간이 지루하면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되는데 그것도 곧 지루해지죠.

그 풍경 앞에서 문득 말이죠. 이상하도록 내가 살았던 방식은, 내가 좋아한 사랑에 대한 감정은 복잡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거죠. 지루한 것으로부터 우린 명료한 것을 찾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이 지루하다던가, 이만큼의 행복이 지루하다던가, 더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지점에서 뭔가 명료해지는 것처럼요. 이상하게 인생은 숨통을 따라서 그렇게 돼 가는 거죠.
(······)
세상에는 신이 관여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게 `사랑` 같아요. 신은 인간을 만들었지만 사랑은 인간이 알아서 만든 감정 같아요. 인간의 자격으로 인간이 필요해서 만든 감정이요.
혼자만 하는 사랑도 가능하세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되는 건 왜죠?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꽤 아픈 일이죠. 하지만 나는 그 부위를 마취시킬 줄 알게 됐습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