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을 이끌고 있는 아이돌 문화지만, 기획사에 의해 철저하게 키워진 이미지 때문인지 그들의 역량이나 음악성을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내가 아이돌 노래에 딱히 흥미가 없다ㅜㅜ 몸치에다 노랫말에 서사가 있어야 편안한 옛날 사람이라서 리듬 타는 건 고사하고 '픽미 픽미' '티티 티티' 같은 단어로 반복되는 단순한 가사가 우선 와닿지 않는다(와닿겠다고 쓴 가사가 아닌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 티티).
그런데 어느새 동남아, 유럽, 아메리카에서 국내 가수들의 초대형 콘서트가 열리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보는 일이 흔해졌다. 심지어 방탄소년단은 한국 최초로 빌보드차트 7위에 오르기까지! K팝이 팝의 본고장에서까지 공감을 얻고 사랑받는 모습이 신기하고 궁금한 무렵 이 책을 만났다. 아니, 정확히는 이 책을 발견하고 K팝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분명히 하게 됐다. '와, K팝에 관한 책이 나오다니!' 하는 놀라움이 앎의 호기심과 필요성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동안 K팝을 다룬 책이 사회현상이나 트렌드 분석, 대중음악사의 한 부분, 또는 특정 스타들에게 집중했다면, 이 책은 2018년 현재 가장 뜨거운 히트곡들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정작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프로듀서들을 만나본, 생생하고 핫(!)한 인터뷰집이다. K팝을 세계적 현상으로 만든 이들 프로듀서는 단순한 작곡가를 넘어서 가수 및 앨범의 컨셉을 조율하고 다양한 협업을 통해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어떻게 음악을 시작했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소속 가수와의 관계는 어떠한지, 작업의 방식과 원칙은 무엇인지 등에 관한 꾸밈없고 명쾌한 답변들이 형광초록색의 올컬러 페이지마다 펼쳐져 읽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해당 프로듀서의 음악을 BGM 깔고 읽으면 귀호강까지!)
프로듀서들의 서로 다른 매력과 스타일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음악 경력이나 선호하는 장르, 곡 작업을 하는 방식도 다양해서 누구는 비트와 트랙을 먼저 짜고, 누구는 가사나 키워드를 먼저 떠올리고, 또 누구는 분위기를 그리고 멜로디로 표현하는 식이다(놀라운 기술이다.....). 작업 방식이 꽤 구체적으로 나오지만 비전문가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수준이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어떻게 이런 곡을 생각해낼 수 있는지 음악가의 머릿속이 궁금해지곤 했는데, 창작의 과정을 조금 엿본 것 같아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모두에게 공통으로 느껴지는 자세라 해야 할지, 철학이라 해야 할지, 하는 뭔가가 있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역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싶다.
책에는 피독, 런던 노이즈, 포스티노, 이우민 등 4명의 대형 기획사 프로듀서 외에도 현역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씨엔블루 정용화, 어반자카파 권순일, 슈퍼프릭 진보, B1A4 진영, 그리고 이 시대 최고 프로듀서로 꼽히는 김형석 등 반가운 인터뷰이 또한 만날 수 있다. 이들 K팝 메이커스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 소통 능력, 새로움에 열려 있는 자세가 지금의 K팝을 있게 했다는 수긍과 함께 나 또한 새롭고 낯선 영역에 열려 있으려는 노력을 일부러라도 해야겠다 싶다. "사람들은 이걸 왜 좋아하지? 왜 나는 마음에 진동이 오지 않지? 내가 이걸 너무 오래 했나?" 하는 고민을 계속하며 닥치는 대로 새로운 음악을 듣는다는 작곡가 김형석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작곡가로서 내 음악을 세상에 내어놓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이 노래를 부르는 대상이에요. 결국 대중이 음악을 듣는 건 이 ‘사람‘을 통해서잖아요. / 작곡가 김형석
다른 사람한테 곡을 줄 때는 양보 전문이에요. 그 사람이 바라는 것 위주로. 대신 음악적으로 믿을 만한 사람하고만 작업하죠. 말이 통해야 실력이 통하고 교집합이 생겨나는데 서로 같은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소통할 수 없잖아요. 인순이 선배님과 이야기해보니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따뜻하게 작아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런 건 기분 좋은 작아짐이죠. / 슈퍼프릭 진보
아티스트별로 곡을 쓸 때 이전에 발표한 음악을 쭉 들어봐요. 그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요. 어떻게 하면 새로움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고민하죠. 사실 장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엑소와 레드벨벳의 음악은 완전히 달라서 아티스트에 맞는 음악인가가 중요하죠. / 런던 노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