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이 리뷰의 원문 주소: http://blog.cyworld.com/char-babe/3957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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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 가장 먼저 흥미를 끄는 건 역시 제목.
헌책 속 손 글씨가 아니더라도 "손글씨"를 좋아한다면 보고파지는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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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눈에 띄는 건 (표지야 뻔하니 스킵!)
누가 추천을 했느냐, 누가 서문을 썼느냐~ !
근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오늘의 청춘들에게 권하는 책이라는 문구가 유난히 눈에 띈다.
책을 받았을 때 출판사에서 신간안내를 보내주었는데 거기에 적힌
박원수 서울특별시장님의 추천의 말 속, 저자 윤성근 씨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 흥미롭기에 적어 옮긴다.
추천의 말
투박한 손글씨에 가슴이 뭉클한 이유
제가 일하는 서울시장실엔 V자 모양의 책꽂이가 있습니다. 특이한 모습에 많은 분들이 왜 저렇게 했는지 묻습니다. 저는 좌와 우로,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으로, 보수와 진보로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며 하나가 되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말씀 드립니다. 이 특이한 인테리어를 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을 쓴 저자 윤성근씨입니다.
윤성근 씨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이름부터 특이한 헌책방의 주인이시죠. 서점 주인에게 시장실 인테리어를 부탁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윤성근 씨의 헌책방을 자주 다니면서 그가 책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소유했던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심지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관심을 갖는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오고 가는 손님들에게는 물론이고, 자신이 파는 헌책의 얼굴 모르는 주인들에게까지 관심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을 보고, 그는 책을 통해 사람과 소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로 그런 마음이 시장실에 담기길 바랐습니다. 물론 결과는 대만족입니다.
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다른 그가 참으로 자기다운 책을 펴냈습니다. 마치 서가에서 이것저것 헌책을 뽑아 보다가 거기 쓰여진 메모를 발견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 친숙하게 느껴지더군요. 이 메모들은 주로 1980, 90년대에 쓰여진 것들입니다. 투박한 손글씨 하나하나에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오래 전에 잃어버린 일기장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입니다.
즐거운 날을 기념하는 책의 메모, 힘든 친구의 손을 잡아주는 마음으로 선물한 책 속의 메모, 심지어 사귀던 이와 작별할 때 무언가 마음을 적어 책을 건넨 경우도 있더군요. 그러니 그 글씨들이야말로 우리의 청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시대의 전후를 살아온 사람들이 어느 날 자신을 돌아보고 싶을 때, 잃어버린 초심을 기억하고 싶을 때 꺼내어 읽으면 새삼 용기가 되어줄 책입니다. 시대는 달라도 젊음에는 아픔과 고뇌가 따르기 마련이지요. 그것은 형벌이 아니라 참다운 성장의 자양분이란 걸 느끼면서, 혹독한 시련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오늘의 청춘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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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곳곳에 일러스트가 있는데, 손 글씨만큼 따뜻하고 정감가는 한국의 세월이 느껴지는 일러스트다.
간단하게 소개해서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헌책방을 운영하는 저자가 자신이 발견한 헌책 속 손 글씨와
그 뒤에 숨은 역사적, 지리적 배경 등을 엮어 공유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은 처음 보았고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운 동시에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해 보았다면
책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적, 또는 타인의 흔적을 발견한 적 한 번이라도 있다면- 더더욱 따뜻한 책.
목차
prologue 헌책에서 걸어나온 글씨들
scene 1 당신의 청춘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scene 2 겨울 나무가 봄 나무에게
scene 3 이름 모를 시간이 보내온 편지
scene 4 대답 없는 질문으로 책 속을 걷다
scene 5 그때 잃어버린 것들은 어쩌면
scene 6 왜 지나간 것들은 모두 따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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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서점 좋아하는 사람은 봤지만...
헌책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요.”
사진 출처: 익스트림플레이
어제 대학로에서 은혜랑 보러 갔던 코미디 연극 ‘수상한 흥신소’ 중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한 대사였다 (기억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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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처 출처: 네이버 책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을 좋아하는 그녀. 헌책이 된 자서전을 품에 꼭 안고 연인을 추억한다. 스콧 니어링은 딱 필요한 만큼만 일하며 나머지 시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하며 돌을 주워 집도 짓고 작은 밭에 먹을 만큼만 농사를 지어 밥을 먹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와 소박하게 살았다. 그러다 100살 되어 삶에게 더 이상 바라는 것 없다며 그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 장면을 보고 생각했지. 새 책으로 만났을 때와는 또 다른 헌책의 설렘이란 게 있었을 거라고…
오늘 리뷰 할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헌책은 과거에 다른 주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 특별한 거 같다. 앞서 말한 연극에서도 여주인공은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을 죽은 옛 연인에게 소개 받은 것이었다. 이처럼 헌책은 누군가의 흔적이 있기 마련이고, 눈에 안 보여도 세월의 흔적으로 그들의 추억을 공유하는 느낌마저 든다. 혼자 도서관이나 헌책방을 찾다 탐험하다가 발견하는 누군가의 아련한 시절도 빛나는 보물 같겠지만 이렇게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처럼 헌책만의 수많은 매력을 하나로 엮어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이 책은 보물섬으로 떠나는 잃어버린 지도와도 같은 희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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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테마의 박물관에 간 것 같다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독서에세이다. 세월을 뛰어넘는 투박한 손 글씨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한다. 주소와 전화번호의 흔적부터, 학교 도서관 도장이 찍히기도 하고 친구의 선물임을 알리는 마음 따뜻한 편지도 있다. 한국 멜로 영화의 고전이 된 ‘클래식’ 속 손예진이나 조인성이 품에 안고 있을 것만 같은 연애편지 적힌 하드커버의 헌책. 그런 심장에 달콤하고도 시린 향수를 부르는 헌책 속 글씨의 사연, 배경과 사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마치 시집을 읽는 거 같이 풍부한 추억과 향수의 책이다. 삶에 지치고 한국에 지치고 사람들에 지친 지금 약해지고 멍든 심장을 위로하는 것 역시 그 사람들의 메모와 지난 인생의 흔적. 이들은 지금쯤 모두 어디 있는가.. 본 적도 없는 타인이지만 잃어버린 친구 보다 그리운 따뜻함이다. 수필이라 하면 주로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가 가득한 에세이 집을 떠올리지만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윤성근 엮고 씀”이라 표지에 써있는 거처럼 남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하여 마치 큰 오빠 일기 훔쳐보는 것처럼 두근거리고 재미있다. 세월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다.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이라면 그 시간을 어떻게 느끼든 상관없이 째깍째깍 그것은 흐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그런 사랑, 헤어짐, 그리움, 열정, 기쁨과 소망 그리고 우울조차 어째서 이런 우연한 헌책 속 손 글씨로 무언가 죽어있던 오래된 방을 그때 화려했던 시절로 옮기듯 반짝거리는 조명을 비춰준다. 한참 끊고 있던 담배의 담배연기를 맡은 느낌이나, 잊고 있던 첫사랑을 길 건너편에서 발견했을 때 같은 순간적인 짜릿함과 비슷하다. 책 속 여러 이야기와 손 글씨를 보면서 전혀 모르는 이 사람과 은밀한 방법으로 소통한 거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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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찾아 헤매었던 잃어버린 따뜻한 사람들은 사실 여태 쭉
헌책 표지 안쪽 어두운 이곳에 숨어 우리가 펼쳐 찾아 주기만은 기다렸던 걸까?
한참 유행해서 툭하면 어디 앞에 힐링이나 치유라는 표현을 쓰지만 이에 대해 한 번은 소년이 불만을 토로했다. 어떠한 작품을 가지고 특정한 목적을 부여하는 것은 그 작품에 옳지 않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Char에게는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가 사람이 고프고 그리운 설렁한 이 마음을 조금은 나아지게 위로했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ㅇㅇㅇ….”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요즘,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지나가는 사람의 험한 입 놀림 한 번 안 들으면 운 좋은 날 같고, 우연히 유럽 같은 매너를 만날 때면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 같이 느껴질 정도로 서울은 삭막하고, 사람들은 무심하다. 전혀 다른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Char의 망상 속에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게 아닌가 상상하게 됐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오래 있을 예정이 아니었고 언어의 장벽이 높아서 국제학교를 다녔다. 그때 약 석달 동안 따돌림을 당한 일이 있었다. 온순한 성격에 항상 웃는 얼굴이었기에 언제든 모두가 "귀여워 해주는(?)" 그런 류의 아이였으니 당시 꽤 당황했었다. 당시 국제학교에서 미국아이들뿐인 곳에 전교생 중 유일한 영국인이었다. 선생님 조차도 호주인 한 분뿐, 영국인은 없었다. 한국화/미국화된 것도 아닌, 100% 영국인의 모습이었던 때라 영국 아이답게 소신껏 공부했고 전교 1등도 하였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예뻐해 줬으나 동급생들에겐 영국 말 못 알아듣겠다며 왕따를 철저히 당했다. 하지만 그리 아픈 기억은 아닌데 이 이야기 하는 이유란 그 친구들의 태도가 내가 느끼는 한국인과, 그리고 그리워한 이 책 속의 한국인의 행방을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죽일 듯 괴롭히면서 1:1 대면에는 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따뜻하고 착한 아이들이었다. 특히 남자애들은 사과를 하고 엄청나게 챙겨줬다. 물론 몰래. 하루는 가장 왕따를 주도하는 Ashley라는 한국계 미국인 친구가 나와 미술실에 단둘이 있게 됐다. TOEFL이 토플이 아니라 “토우플”이라고 알려줬던 게 기억에 남는다. 아무튼 그녀는 내게 결정타를 던졌다. "Charity는 항상 버티니까 계속 그러는 거야. 한 번이라도 애들 앞에서 확 울어버리던지 그래 봐. 싫어하는 티를 안 내니까 더 괴롭히는 거야." 이해가 됐다. 착하고 똑똑한 전형적인 영국학생이 선생님들이 모두 좋아하는 나였고, 말투 자체도 미국어와 달리 고급스러워 짜증났을 테고 성적 잘나오니 심지어 체육선생님과 성관계 한다는 엄청난 악질소문까지 돌았다. 뭐... 그걸 체육시간에 우연히 들으신 선생님이 엄청 화내며 얼마나 얘가 기분 나쁘겠냐며 우리들을 잘 달래는 어른스러운 대처로 무사통과였던 사건이다. 어쨌든 꼬투리 잡으려면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문제는 나는 한없이 성숙하고 강했다는 거다. 밀어도 꿈쩍하지 않고 힘들어도 노력만 하는 당시엔 전형적인 영국 섬사람의 성향이었다 (파도가 거칠어 지금은 침식된 듯 하지만…). 사실 그 아이들도 하나같이 강하고 착한 아이들이었는데, 그걸 왜 그리 들키기 두려워하며 나를 끝까지 “이지메” 시켰을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아이들의 추억 보다는 대학생부터 중년까지의 여러 삶의 생각 (손 글씨 남기는 사람들의 연령대를 고려하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이 대부분이지만 이때 추억이 생각난다. 한국이 그런 느낌이다. 다들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고 사랑하기 두려워서 강하지 않은 척 다들 무리를 지어서 다니고 자신의 가능성을 보이기 보다 외형에만 치중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푹 빠지고 그걸 남에게 신나게 소개하고 공유할 수 있고 연인을 사랑하는 만큼 옆에 사람에게 포용력 있을 수 있는 당신들은... 어디 깊은 구멍을 파고 숨어든 거처럼 마른 서울 사막. 이 곳도 지나면 조금 따뜻하게 기억될려나...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에서는 단 한 순간도 느껴지지 않는 삭막함인데, 이 사람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오늘 만나는 사람들도 속으론 다 이런 모습일련지 괜시리 손을 뻗게 된다. 지난 것뿐 아니라, 숨어있는 속내도 오히려 따뜻한 특이하고도 특별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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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은 시간을 잡아놓는 거 같다.
그래서 다시 펼치든지 책장에 보여도 그 순간의 느낌이 느껴진다.
오묘한 것은...
아픈 기억도 좌절과 희망의 상실 조차도
책을 통해 다시 추억할 때면 하나같이 아름답고 또는 쓸쓸하면서도 뭉클함이 더 커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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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주친 찾아 헌책을 입양 보내기 전에 손 글씨나 특별한 흔적이 있으면
사진으로 남겨두는 윤성근 씨는 매우 다양한 책과, 그 책의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고
운 좋으면 주인에 대한 이야기나 주로 그 편지, 시, 메모 등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을 소개한다.
몰랐던 무언가를 알게됐을 때- 이걸 모르고 어떻게 지냈을까 싶은 재미난 사람 이야기들이 있다.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직 읽지 못한 책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 나도 해본 적 있는 사랑과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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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언급했듯 이 책에는 다양한 서적에 대한 소개가 자연스럽게 있다 보니 책 지름신이 적잖다.
사진 속에 보이지만 제목 l 저자 l 출판사 l 출판년도 가 적혀있다.
목차에 따로 끝에 정리된 건 아니지만 위와 같이 제목과 저자 모두 잘 보이게 정리해놨다.
그래서 찾고픈 부분이 있다면 이를 기억해내 되돌아가 다시금 발견하기 쉽다
(물론 책이 분실되어 작가 미상으로 메모만 남은 경우도 있다).
Char는 95쪽에 나오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기나 긴 자아도취와 사악함을 받아주고 싶지는 않은데- 라 생각에 바로 등을 돌렸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그건 책을 읽어본 후에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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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귀여운 사진도 찍어놓으셨다.
여고시절엔 만 원짜리도 곧잘 책 속에 숨겨두고 도토리 묻은 자리 까먹은 다람쥐처럼 지냈지.
그러곤 우연히 엄마나 아빠 책 보다가 뭔가 나오면 앗싸!~ 돈 벌었다~ 라며
또 자기 도토리는 못 찾고 남의 도토리 엄하게 파내 신나게 먹는 다람쥐의 긍정 마인드를 발휘하지.
What?~~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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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글씨 대부분 80-90년대인데,
날짜가 적힌 손 글씨만 보면
저때는... 행복했는데... 라며 문득 슬퍼지기도 한다.
책 내용 중 조지 오웰 (George Orwell, 1903-1950)의 1984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1984년 이전에 손글씨를 남긴 것과 그 후에 남겨진 손글씨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미래일 때만 희망찬 것이랄까...122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손 글씨로 "좀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라고 적힌 것이
책에는 참 앞날에 대한 꿈과 희망에 대한 글이 많다. 그런 바람이 독자에게도 느껴지는지... 그 희망이 여전히 빛나는지...
과거에 쓴 글임에도 왜 미래에서 보내온 편지처럼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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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열정적인 사랑의 흔적도 많다. 배우는 자세로 읽게 되더군...
112쪽에는 이런 손 글씨가 있다:
방향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가다가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딱 멈춰 설 수 있고
무엇보다도 넘어졌을 때 혼자 일어설 자신이 생겨야
사랑을 시작할 자격이 있다.
사랑 때문에 울어서는 안 된다.
1996. ㅇㅇ이에게.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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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들이 많은데 다 리뷰로 담지 못 하는 게 아쉽다.
71쪽 루카치 (György Lukács, 1885~1971)와 "맑스" 이야기는 지금은 꿈만 꾸는 책의 위대함, 책이 통치하던 시대를 상상하게 해줬다.
막스 (Karl Marx, 1818-1883)의 책, 심지어 언뜻 비슷한 막스 베버도 오해 받을까봐 들고 다닐 수 없던 시절.
85쪽 "철학은 나의 밥이 될 수 있는가"로 고민했던 당시 나이 현재 Char와 동갑의 청년의 솔직한 고뇌도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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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을 운영하는 저자는 어쩔 수 없이 돌려주지 못하고 이 책을 팔았다는 슬픈 비하인드 스토리 ㅠ.ㅠ뜨억~
책이 사랑 받던 시절- 그 시절이 언제였나 당신은 기억하는가?
그래도 다행히 아무리 “콘크리트 정글” 도심이라 해도 책과 손 글씨란 다르다.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유행도 타지 않고, 유행을 타더라도 자신의 개성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커버 하나 펼칠 때마다 자신의 세상을 스스로 열어야 하고, 상상력과 창의력은 자신만의 움직임으로 시동이 걸린다. 그래서 “아!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람들이 다 여기에 있구나!”하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사랑을 고백하고, 오글오글 거린 다는 농담 없이도 지식인임을 표현하며 아끼는 책 안쪽에 메모와 감상 평도 적는다. 이것만큼은 누구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책을 열어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공유의 기회 조차 없으니 눈치 볼 필요도 없다. 분실한 책을 습득하여 열어본다 하더라도 빛이 세는 예쁜 나무 현관문 밀고 고개만 배꼼 내민 것이니 당신이 궁금해 찾아온 반가운 손님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니 책은 모두의 공간임과 동시에 가장 남의 시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자주 잊는, 오아시스 같은 것이 책이다.
97쪽 중 - 우리 모두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
스마트 기기만 난무하는 요즘은 책 보다 그림, 그림 보다 영상이다. 마케팅이 앞서는 시대에 뭐든 빨리 소비되고 집중하지 않아도 해치울 수 있는 것들을 원한다. 이것이 모두 잘못됐다 생각하지는 않다. 그래도 이런 트랜드 덕에 책은 설 자리가 없어 그나마 융통성을 보인 것이 e북이다. E북을 읽을 수 있는 e리더만 하더라도 매년 판매와 수출이 저조하여 살아남을 수 있으려나 두려운 요즘 종이 책이란 찾아보기 더욱 어렵다. “아이패드나 폰으로 보면 책 읽는 줄 아무도 모르자나요!”라며 종이 책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고, 단지 종이 책이 좋아서 그런 사람도 있고 Char처럼 전자기기로는 도무지 집중할 수 없어서 도서관에서 책 빌려 읽어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5년 전에 비해 요즘은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 보다 공무원 시험 준비 프린트 관찰하는 이들이 더 많을 판이니 참 안타깝다. 겉치장을 방패로 쓰는 요즘 도시인들은 Char 역시도 책에게 무언가 더 대단한 것을 바라는 걸까? 레이저가 나오든지 장면마다의 배경을 상상할 수 있는 냄새로 무언가 뇌의 자극을 받길 원하는 걸까?
그러다가 다시금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를 읽고는 아차! 놀라버린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앞서 나아가고 유행 타고 화려하게 컴퓨터화 된 지금 책만큼은 뒤로 가면 갈수록 독자에게 많은 것을 건네준다. 헌책은 새 책이나 전자 책이 줄 수 없는 많은 추억과 지혜를 안겨준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키워준다. 잊었던 추억을 기억나게 해준다. 그 어떤 새로 나온 책 보다 10년, 50년, 100년 이상 오래됐으면 오래됐을 수록 옛날에 쓰인 그 책들이 가장 심장 가까이 달려오는 것만 같다. 또 다른 망상을 하는 거 같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면 망상은 기본이니까. 마치 세상이 다 끝나가도 책만큼은 영원할 거란 꿈을 꾼다. 우주로 둥둥 떠올라 수 만년을 돌아다니다가 (여기서 스타트랙 개그 하나 넣고픈 마음 꾹 참고~) 우리와 다른 누군가와 만나 그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해줄 것만 같다. 이상하게 우리들이 집착하는 SNS나 광고 같이 사실 큰 의미 없는 것들은 금방 타버리고 없어질 거 같고- 종이로 만든 이 책들은 다이아몬드처럼 강할 것만 같다. 우리의 삶의 흔적이니까. 어쩌면 그래서 손 글씨를 계속 남기려는 걸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초월하는 타임립 처럼 그 책이란 우주선을 타고 같이 떠나고 싶어서 말이다. 물론 Char도 항상 책을 읽은 후 안쪽에 이름과 날짜, 그 책을 읽은 나라를 적는 버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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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0일 수요일, 습한 장마철 겪는 서울
‘헌책방 달려가고픈 사랑스러운 책 한 권 끝내고…’
Charity L. Kingsley
이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