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조선 시대 왕의 밥상을 수라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밥을 하는 공간을 수랏간이라고 불렀는데 이런 왕의 먹는 행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적인 의미를 띄는 경우가 많았다. 평범한 백성이야 말 그대로 살기 위해서 먹었지만 왕에게는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로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왕의 밥상과 그것을 요리한 궁궐 요리사의 존재를 통해서 조선 역사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조선 시대 왕의 밥은 절대권력자의 음식 치고는 크게 화려하지 않았다. 물론 특별한 잔치나 행사가 있을 때는 풍성하게 차려냈지만 매일 매일 먹는 왕의 밥상은 화려하고 사치스럽기보다는 영양가 있고 균형 있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한다. 사실 조선은 유교를 국시로 건국한 나라이고 멸망하기 전까지 근검과 절약을 강조했었는데 왕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일반 백성의 밥상 보다는 좋았겠지만 왕의 수라상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검소한 밥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음식에 대한 절제된 모습을 왕이 솔선수범 함으로써 국가의 정치적인 이념을 보였던 것이다. 왕이 이렇게 먹는데 일반 사대부들이 더 화려하게 먹을 수는 없었던 것이고 왕에서부터 가장 말단의 백성에 이르기까지 먹는 것에 대한 조절을 하게 했다.
이런 조선 건국 이념이었기에 왕은 대체적으로 소박하면서도 담박한 밥상으로 식사를 했는데 어떨 때는 그조차도 더 조절하는 경우가 있었다. 철선, 감선, 소선이라고 불렀던 왕의 밥상은 왕 스스로의 근신으로 기근이나 홍수 등 나라에 큰 재앙이 발생했을 때 왕의 하늘의 경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두려워하면서 스스로 반성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철선은 아예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고 감선의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이고 소선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었다. 이중에서 극단적인 철선은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았고 감선을 주로 했는데 실제 어려운 상황에서 감선을 하기도 했지만 정치적인 표시로 감선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최고통치자의 건강 문제는 1급 비밀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데 왕정 시대인 그때는 그야말로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밥을 안 먹거나 덜 먹는 행위는 그 자체로 건강에 큰 해를 미치기에 왕권을 강화하거나 신하들을 통제할 수단으로 하기도 했다. 일종의 기싸움인데 왕의 옥체에 해가 될까봐 신하들은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이렇게 왕의 밥상과 관련해서 먹는 행위의 이면에 벌어진 여러가지 역사적 의미를 잘 살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의외로 이 먹는 것과 관련해서 정치적인 의미가 상당했다고 볼 수 있다. 책에서는 먼저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왕실 요리사인 이인수를 중추원의 관리로 임명한 이야기를 한다. 중추원은 군사와 왕명 출납의 사무를 관장하는 중앙관청이었는데 이런 중요한 곳에 요리사라니. 당연히 상소가 올라왔지만 태조는 응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인수가 비록 무장은 아니었지만 고려말부터 태조를 따라다니면서 그의 부대 전체의 요리를 책임진 책임자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조선이 건국되면서 군사 제도상 먹는 부분을 이인수에게 책임지우기 위해 단순한 궁중요리사가 아닌 중추원 관리로 임명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인수는 조선 최초의 공식 궁궐 요리사라고 부를 수 있다.
감선을 가장 많이 한 왕은 영조다. 제일 오래 왕위에 있었으니 감선도 제일 많이 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밥 먹는 걸로 신하들을 통제하려했던 것이 더 크다. 즉 다양한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감선을 행한 것이다. 천둥과 번개로 정릉의 회목이 벼락을 맞게 되자 자신의 부족함을 빌미로 감선을 했지만 사실은 주위 신하들에게 정신차리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탕평 같은 자신의 말을 잘 안 듣는 관리들을 질책하기 위해서 감선 하기도 했다. 영조는 감선을 통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 시키고 절약하고 검소한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 밥상 정치를 적절하게 이용한 것이다.
이밖에 책에서는 당연히 왕의 목숨과 관련된 음식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또 수라에 독을 타서 왕을 죽이려고 한 것은 없는지 등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요리는 남성보다 여성이 잘 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적어도 궁중에서는 남성 요리사가 대세였다. 그것은 남성 중심의 봉건 사회와도 관련이 있어서 여성이 국가의 공적 업무에 진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라의 일이 엄청 고되어서 체력적으로도 여성보다 남성이 유리한 탓도 있다.
사실 역사에는 음식을 통한 독살이 제법 있었다. 그만큼 매일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조선에는 그런 시도도 적었고 실제로 성공한 일도 없다. 몇몇 왕이 독살 당했다는 소문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만큼 왕의 먹는 행위는 그 자체로 고도의 정치 행위일 수 있고 실제로 감선 등을 이용해 정치력을 펼치기도 했다는 점에서 왕의 밥상은 단순히 왕이 밥 먹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책은 왕의 밥상을 통해서 드러난 여러 역사적 사실을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새삼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왕의 밥상과 수라 등 평소 눈 여겨 보지 않았던 부분에서 사실을 캐내어서 역사를 보는 눈을 넓게 하는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