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책은 이 책 단독으로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독특하다고 하는 것은 다른 책에서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소설을 실제로 쓴 것이다. 작가의 '둔색환시행' 이라는 책에서 저주 받은 책으로 소개하는 바로 그 문제의 책이다. 작가는 일부분의 책 내용과 제목만 언급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실제로 그 책을 따로 펴냈는데 바로 이 책이다.
둔색환시행과 짝으로 읽으면 좋긴 하지만 이 책은 그 자체로 완결된 느낌이라서 꼭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냥 독립된 다른 책으로 읽어도 된다. 특정 책에 언급된 책을 독립적으로 펴내는 형식이 참 독특한 것인데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완성도는 높고 온다 리쿠라는 작가 특유의 몽환적이면서 특이한 상황의 이야기가 잘 펼쳐진다.
책의 열 두 살 아이인 '비짱' 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름에서 보듯 딱 정해진 이름이 없다. 비짱은 일종의 별명같은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불분명하다. 비짱이 사는 곳은 외딴 곳에 있는 '추월장' 이라는 곳이다. 유곽이라고 하는데 사실 아이 입장에선 이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책은 시종일관 아이에 대해서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아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바로 아이에게는 세 명의 엄마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를 낳은 엄마 가즈에. 그리고 일상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키워주는 선생님이자 엄마인 사야코. 또 추월장의 카운터를 보는 표면상의 엄마 후미코. 친엄마는 가즈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적인 엄마의 역할은 사야코라고 하겠다. 후미코는 그냥 서류상의 엄마이고. 세 명의 엄마가 있지만 한 명의 엄마만 있는 것과 같은 상황.
'사야코' 엄마는 비짱에게 창문 너머 어느 어두운 곳을 '밤이 끝나는 곳' 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 곳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비짱과 엄마나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만날 수만 있다면.
책은 나인 '비짱'의 시점에서 모호하면서 애매한 분위기의 그 상황을 잘 묘사하면서 전개가 된다. 처음에 모든 것이 비밀에 쌓여 있는 듯한 내용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밝혀진다. 성별도 정체도 끝에 가서는 알려지는데 일본 근대사의 어떤 특정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 그것에 따르면 비짱은 그냥 '아무나'가 아니라 '존귀한 신분' 이었다. 하지만 사건이 실패하면서 비짱의 존재도 잊혀진다. 비짱은 평범하게 자라지만 과연 그 때 그 일이 진짜로 일어났는지 진짜 내 자신이 그런 신분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둔색환시행'의 액자 소설인 이 책은 작가 특유의 글쓰기가 잘 느껴지는 책이다. 온다 리쿠 작가는 몽환적이면서 환상적인 내용의 소설도 잘 쓰는데 거기에 잘 부합하는 내용이었다. 책 전개가 좀 불친절한 면이 있긴 하지만 독특한 설정과 전개가 쉽게 잘 읽힌다. 이 책과 짝인 소설 '둔색환시행'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소설은 영화보다는 연극이 낫겠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에 공감이 간다. 연극화하기에 딱 좋은 전개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영상화가 안되게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났나? 읽는 순서는 상관없지만 둔색환시행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