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지도를 보면 중부 유럽의 내륙국이 있다. 바로 헝가리인데 이 헝가리가 묘한 위치에 있는데 그것은 서유럽에서 보면 러시아 세력을 막는 최일선의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데 헝가리가 유럽의 일원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어색한 점이 있다. 과거 동유럽의 공산 국가였다가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유럽연합에 가입하긴 했지만 좀 이질적인 면이 있는데 그것은 이 나라 민족의 구성과 관련 있다.
마자르족. 헝가리를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인데 이런 저런 혈연 관계로 얽혀 있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그들 단독이다. 언어적으로 가까운 나라도 없다. 그냥 홀로 우뚝 서있는 나라인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들이 조상은 중앙아시아 그중에서도 카자흐스탄 쪽에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유럽이지만 아시아 적인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독특한 위상이 있고 지리적으로 유럽의 맨 동쪽 끝에 있어서 복잡한 유럽과는 떨어져 있다.
유럽인데 유럽 답지 않은 이 특이한 나라는 그래서 동양과 서양이 오묘하게 교차하면서 여러 문화와 상업과 종교가 발달하고 여러 민족들이 오가는 그야 말로 국제적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면에 그만큼 외부 침략의 1순위였기에 여러 번의 전쟁으로 인해서 큰 피해를 입은 나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헝가리의 역사를 수도인 부다페스트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넘어온 마자르인들은 수십 년 동안 슬라브인들이나 여러 튀르크계 부족들과 함께 흑해와 다뉴브 강 사이의 지역에서 목초지를 찾아다녔다. 기본적으로 유목인들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9세기 말엽에 다뉴브 강 유역의 땅을 차지하려고 했는데 이때의 활동으로 훗날의 헝가리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 다뉴브 강을 중심으로 정착하여 결국 나라를 세워 독립된 왕국을 건설하였다.
나름의 번영을 구가하던 헝가리 왕국에 엄청난 시련이 닥친다. 헝가리 역사에서는 이때를 '유린'의 시기로 기록하고 있다는데 바로 '몽골'의 침공이었다. 역사상 최강의 군대라고 할 몽골의 침략은 헝가리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아마 그때의 헝가리인들은 어리둥절했겠지만 사실 몽골 황제의 죽음으로 군대가 철수한 것이다. 그야말로 망하기 일보 직전에 겨우 살아난 헝가리지만 인구의 절반 정도가 몽골의 침략으로 인한 사상자가 될 정도로 큰 인적 피해를 입었고 무엇보다 나라가 황폐화되어서 다시 복구하는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몽골의 침략으로 끝날 것 같은 불행은 이후 튀르크인들의 침략으로 또 고난의 시대를 맞이한다. 당대 제국으로 발돋움한 오스만이 온 유럽을 휩쓸고 다니는 입구에 헝가리가 있었던 것이다. 역시 외부의 침략에 어쩌면 바로 미터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부다는(부다페스트는 과거에 부다와 페스트로 나누어져 있었다) 일진 일퇴의 공방 끝에 결국 함락 당했고 결국 오스만 제국에 의해 백 년 이상 점령되었다. 이때 헝가리는 세 개의 나라로 분할 되었고 훗날 에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제국의 일원이 된다. 책은 여러 단계에 걸쳐서 침략을 받고 다시 일어서고 그러다가 중세 이후 합스부르크 제국에 속해있다가 결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 제국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
헝가리가 외로운 나라라는 것은 외부의 침략이나 어떤 압력에 최일선으로 대응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를 거의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몽골의 침략 때 당시 헝가리 왕은 다른 유럽의 나라들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그저 위로의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 뒤로 오스만이나 다른 침략에서도 늘 혼자였다. 왕실끼리 복잡하게 얽혀서 가깝다가 싸웠다가 하는 다른 서유럽 국가들처럼 도와주는 나라가 없었다. 그것이 이 나라의 특이한 면이다.
19세기 후반이 되면 헝가리의 위상이 달라진다. 부다페스트는 인구나 경제 면에서 유럽의 1,2위를 다툴 정도의 도시가 되었고 문화도 융성했다. 그 상황은 오래 지속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불행히 제국이 독일편에 서서 패전 했기에 나중에 헝가리 왕국으로 독립한다. 하지만 축소된 과거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나치 독일에 협력해서 결국 2차 세계 대전에서 또 독일 편에 선다. 이 두 번의 패착으로 결국 헝가리는 옛 영광에서 영영 멀어지고 만다. 책에서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시절 이후로 양 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부침 하는 헝가리의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한편 헝가리는 유럽의 어떤 나라보다도 유대인에 관대한 나라였다. 많은 수의 유대인이 살았는데 1910년 인구 조사에서는 헝가리 인구의 8% 를 차지했고 특히 부다페스트의 주민 4분의 1 정도가 유대인이었다고 한다. 주로 상업에 종사했던 다른 유럽의 예와는 달리 헝가리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했다. 이때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유대계' 헝가리인이라고 할 정도로 자신들이 그냥 헝가리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군대에도 많이 들어갔고 부다페스트 시장까지 배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그리스도교를 믿는 헝가리인처럼 그냥 유대교를 믿는 헝가리인일뿐이었다.
그러나 유대인은 유대인이었다. 나라가 어려워지고 여유가 없던 시절 어김없이 억압을 받았다. 특히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편을 들었던 헝가리는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 압력을 거절할 수 없었다. 전쟁 말기 헝가리는 히틀러와 결별하려고 했지만 독일의 침공을 받아 점령 당한다. 독일의 지배에 들어간 후 헝가리 유대인들은 히틀러의 말살 계획에 따라 수 많은 목숨을 잃게 된다. 한때 유럽 중동부에서 가장 안전하게 오래 살 수 있었던 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죽음으로 내몰리게 된 나라가 돼버린 것이었다.
책은 복잡한 헝가리 역사를 부다페스트 중심으로 잘 정리했다. 이 한 권으로 헝가리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헝가리가 어떤 나라라는 것을 알기에는 충분하다. 크게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어서 술술 읽기 좋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지리적인 특성과 아시아에서 건너온 민족이라는 특징이 어우러져서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는 나라가 헝가리다. 우리나라와는 최초의 동구권 수교 국가이고 외교적으로도 친밀하다. 지금은 한국 기업들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서 경제적인 교류도 활발하다. 주위의 나라들에게 자주 침략당했고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 홀로된 처지라는 점에서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나라라서 앞으로도 더 가까운 사이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