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더불어 우리 고대사의 찬란한 한 부분을 담당했던 나라다. 중국 만주 지방과 일본까지 진출해서 국력이 셀 때는 고구려까지 위협했던 나라다. 경주에 신라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반면에 백제는 그 유구한 역사에 비해서 유물 유적이 적게 남아 있어서 무척 아쉬운 나라이기도 하다. 사실 삼국은 신라가 했지만 국력 자체를 보자면 신라 보다 훨씬 강했던 나라가 백제다. 신라를 멸 하지는 못해도 당과 연합한 신라에게 그렇게 쉽게 멸망당한 나라는 아니었다. 사실 신라가 당을 끌어들인 이유도 지속적으로 백제에 압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백제의 국력은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신라가 국력을 모으고 당과 연합해서 고구려, 백제를 멸하고 3국을 통일했다고 보통 알고 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까지 백제의 공세를 받아 내기도 힘겨워했던 신라가 어찌 보면 생각 보다 쉽게 백제를 멸망 시킨 것은 미스테리하다. 아무리 백제 의자왕이 말년에 흐트러졌다고 해도 국력이 급속도로 줄어 들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백제 말기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는데 제목에서 느껴 지듯 기존의 개념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책은 백제 말 무왕부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무왕은 신라 선화 공주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왕인데 책에서는 무왕과 선화 공주와의 이야기와 함께 익산으로의 천도도 이야기한다. 무왕이 좀 더 오래 살았거나 의자왕의 의지가 있었다면 백제 최후의 왕도는 익산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무왕의 재위 기간이 길어지고 태자 책봉이 된지가 오래된 의자는 10년만에 왕위에 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영특하다고 소문한 그는 즉위하면서 지방을 돌면서 민심을 다독였다. 이때 죽을 죄를 지은 자를 제외하고 갇힌 자들을 용서하면서 큰 칭송을 들었다. 민심을 아우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해서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그리고 외치만 잘 한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는 왕권을 확립하고 국가를 풍요롭게 하는 등 대단한 군주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의자왕이 내내 그런 모습을 보였으면 우리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내외적으로 나라가 안정되었다는 안도감이었을까. 그는 그 이후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다. 사치와 향락에 빠지면서 긴장이 풀린 것이다.
당시 신라와 당이 밀접하게 연결되고 고구려는 정정 불안의 상황에 있었는데 이것이 국제적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백제가 부강하다는 자만심에 빠져있었다. 당장 신라나 고구려를 멸망 시키지는 못해도 백제가 망할 가능성은 없다고 여긴 것이다. 어찌 보면 목표 상실이었을 수도 있겠다. 나라의 경제력도 괜찮고 당과 고구려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고 신라는 언제든 쳐들어가서 밀어붙일 수 있으니 그냥 그 상태로 만족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백제의 압박에 처절한 생존 의지를 가진 신라가 전방위적으로 노력한 결과 당과 연합해서 백제를 칠려고 했다. 이것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당이 직접 침략 하리라고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도성인 사비가 당군에 포위 당한 상태지만 의자는 웅진에서 굳건히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비가 함락당하고 며칠 후에 바로 항복한다. 사실 여기까지 보면 백제의 군사력이 떨어져서 항복했다고 할 수 있다.
책에서는 의자의 항복의 뜻이 말 그대로 전투에 졌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 왕조의 멸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말한다. 당시 의자왕은 당의 요구를 들어주고 친당적인 정권을 세우면서 전쟁을 끝낼 생각이었을 것이다. 비슷한 경우가 역사에는 많다. 당도 굳이 백제를 멸망 시키기 보다는 자신들의 유리한 아군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신라가 백제에 대한 원한이 너무나 깊었고 이후 이어지는 부흥 운동으로 결국 수 백 년 역사가 사라지게 된다.
백제는 의자왕이 수 많은 사람들과 당으로 끌려감으로 끝이 난다. 의자왕이 생각한 대로 단순 항복이었다면 끌려 갔으면 안된다. 끌려 갔다고 해도 다시 오거나 아니면 새로운 왕이 옹립 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백제에 공식적인 왕은 그 후로 없었다. 대내외적으로 인정 받는 왕 즉위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백제의 마지막 왕은 의자왕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 이후 백제땅에 왕이 새롭게 나타났음을 근거로 마지막 왕은 의자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의자왕이 당으로 끌려간 뒤에 당은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세우고 직접 통치를 하려고 한다. 여기에 도독으로 의자왕의 아들인 융을 임명한다. 그러나 백제땅에는 당군에 저항하는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른바 백제부흥운동. 복신과 도침을 중심으로 저항에 나선 결과 대부분의 백제 땅을 수복할 수가 있었다. 이때 이들이 왕으로 삼은 사람이 풍이었다. 풍왕은 일본에 가 있던 의자왕의 아들이었는데 친당적인 융과 친왜적인 풍이 대립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모든 멸망에는 분열이 있는데 이들에게도 분열이 있었다.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이어서 풍이 복신을 죽이면서 부흥 운동 세력은 분열되고 만다. 결국 구심점을 잃은 저항 세력은 광복에 실패하고 만다. 당의 도독이 된 융도 신라에 대한 공포감으로 당으로 떠나게 되고 결국 백제는 더 이상 저항할 세력도 의지도 없게 되고 수 백 년 역사가 끝이 나게 된다.
책은 백제 최후의 전투로 백강 전투를 들고 있다. 풍왕의 요청으로 원군으로 온 왜군과 백제의 연합군이 당과 신라의 연합군에 대패를 하면서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게 된다. 백강 전투에 대해서는 사실 많은 연구가 된 것이 아닌데 이 책에서는 정예 수군이 따라온 당에 비해 단순 병력 수송선만 온 왜군이 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나름 설득력이 있다. 지리와 상황을 잘 아는 백제 연합군이 힘도 못 쓰고 패한 것은 단순한 전력 차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책에서 제시한 관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 긴 분량의 내용은 아닌데 좀 난이도가 있는 내용이다. 기본적으로 삼국 시대와 백제사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있어야 설명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지은이가 주장하는 바에 대한 반론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읽히진 않는다. 그러나 백제 멸망의 상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많은 토론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어서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