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한 수도원의 위대한 탐정인 캐드펠. 그는 젊을 때의 수 많은 경험을 뒤로 하고 이제는 허브차를 키우면서 신에게 봉사하는 평범하면서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자신의 삶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의 능력을 안타까워한 신의 배려인지 주위에 일이 끊이지 않는다.
당시의 배경을 알아야 책을 좀 더 읽기 편하다. 당시 잉글랜드는 내전 상태였다. 헨리1세가 왕위계승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이 사망한 후 그의 딸인 모드 왕후가 사촌인 스티븐 왕과 왕위를 둘러싼 내전이 일어났다. 혈육상 모드 왕후가 헨리 1세의 직계였지만 여자라는 불리함이 있었고 그 틈을 타서 스티븐이 영국 왕을 선포하고 나선 상황이었다. 그래서 주위 영주 제후들은 각기 편을 갈라서 싸우고 있었는데 어느 한 진영이 압도적으로 누르지 못한 대치 정국이 이어지고 있었다.
평화롭던 수도원도 그 여파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이 내전이 가까운 슈르즈베리까지 몰려왔고 결국 성은 스티븐왕에게 함락 당하고 만다. 모드 왕후측이 패배한 것이다. 왕은 자신의 위엄을 드높이기 위해서 성 수비병 전원을 처형하기로 한다. 무려 아흔 세명. 이윽고 처형된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수도원 수사들이 동원되고 당연하게도 캐드펠이 앞장서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수를 헤아려도 시신은 모두 아흔 네구다. 분명 아흔 세명이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누가 살인을 하고 슬쩍 시신 속에 유기한 것이었다.
그 누가 시신의 숫자를 세밀하게 세었을까. 또 숫자가 다르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겼을까. 그저 적의 시신이 한 구 더 늘었다고 여겼을 것인데. 이런 사소하고 작은 차이를 그냥 넘기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의 주인공 캐드펠 수사다. 그는 시신의 숫자에 의문을 품고 상태를 확인한 결과 살해되어서 다른 시신들 곁에 놔둔 것임을 알아낸다. 누가 살인을 하였는가. 자신의 위엄에 도전한다고 여긴 스티븐 왕의 지시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는 캐드펠. 우선은 이 사람이 누군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저런 상황을 통해 시신의 주인공이 밝혀진다. 그렇다면 그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한편 캐드펠에게는 또 다른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 바로 모드 왕후 측 지지자의 딸인 고디스를 무사히 탈출시키는 일이었다. 성이 생각보다 빨리 함락이 되고 그녀의 신변을 우려하여 수도원에서 숨어지내게 했지만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캐드펠은 자신에게 피난온 이 가여운 아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캐드펠의 수사가 전개되면서 조금씩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다. 고디스 아버지의 향사도 관련되면서 구해야할 사람도 늘어난다. 그리고 역시나 이어지는 반전의 내용. 캐드펠은 살인 사건의 범인도 잡고 명예도 지키고 고디스를 비롯한 모드 왕후 측 사람도 구해야할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이 된다.
이번 책에서는 눈여겨 볼 인물이 등장한다. '휴 베링어'. 젊고 야심있으며 영리한 이 인물은 처음에 캐드펠 수사의 적으로 여겨진다. 모드 왕후의 편에서 스티븐 왕의 편으로 돌아서서 뭔가 공을 세우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것이 아닌가 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의리도 있고 상황 판단도 잘 할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악인이 아니었다. 앞으로 캐드펠의 좋은 조력자로써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캐릭터란 생각이 들었다.
전편에 비해서 이번에는 주인공의 미션이 좀 더 복잡해지고 위험했는데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일을 슬기롭게 잘 해결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