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에 어지간히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라면 임진왜란이 어떤 사건인지는 아마 대부분 알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이순신 장군의 업적도. 아니 임진왜란보다 이순신 장군이 더 유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임진왜란은 생각보다 복잡한 전쟁이었고 관련된 여러 나라에 큰 영향을 끼친 국제전이었다는 사실을 많이 모르는 것 같다. 단순히 이순신 장군만 알아서는 안되는 전쟁인 것이다. 이 전쟁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데 거기에 딱 맞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임진왜란은 말 그대로 임진년에 일어난 왜적의 난이다. 1592년 대규모의 왜군이 한반도 조선을 침략한 전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분로쿠- 게이초의 역, 중국에서는 만력조선전쟁이라고 부른다. 분로쿠 게이초는 당시 일본 천황이 사용한 연호고 그때 일어난 전쟁이라는 뜻이고 만력은 당시 명황제 만력제를 말한다. 다들 1592년에 일어난 일임을 이야기한다.
그럼 왜 전쟁이 일어났을까.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당시 일본의 지배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헛된 야심때문이다. 히데요시는 약 100년간 이어져 온 전국시대를 통일한 1인자였다. 하지만 완전한 평정이 아니어서 무사들의 불만 요소가 있었다. 이것을 해외 원정을 통해 해소시키고 히데요시 명나라까지 정벌하겠다는 히데요시 본인의 강력한 야망으로 조선을 침략한 것이다. 사실 그가 실질적으로 명나라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는지 아니면 조선만 정복할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그의 야욕이 침략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당시 조선은 어떠했는가. 이미 고려때부터 왜구의 피해를 입어왔었고 조선에 들어와서도 여러 번 왜구의 난이 있었다. 그래서 왜적에 대한 경계는 하고 있었지만 당시 일본의 정세에 대해서는 그리 세밀하지 못했다. 오랜 기간 공식적인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랴부랴 침략 1년전에 통신사를 보내서 상황을 엿봤지만 침략 징후가 있다는 정도만 알았다. 그마저도 당색에 따라서 침략 여부가 달랐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침략할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를 하긴 했다. 명망있고 실력있는 장수들을 남쪽 지역으로 보내고 성들을 수리했다. 하지만 그 정도뿐이었다.
당시 조선이 생각한 것은 최대 1만명 정도의 왜군 침략을 예상하고 거기에 맞춘 준비였다. 사실 지금 입장에서 그것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15만명의 대군이 일거에 침략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역사상 그렇게 많은 왜군이 침략한 적도 없었다.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되기도 했고 그 평화속에서 군대의 방비도 상대적으로 흐트러졌다. 나름 준비를 하긴 했지만 엄청난 대군이 올 줄 상상이나 했을까. 사실 그 몇 년전에 율곡 이이가 십만 양병설을 주장하긴 했지만 그 뜻을 이루기도 쉽지 않았다. 그 많은 상비군을 운영할 자금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당시 조선으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침략을 당했어도 어느 정도 방어는 할 줄 알았는데 초기에 너무 힘없이 무너졌다. 잘 훈련된 조총 부대 앞에 조선군은 큰 힘을 쓰지 못했다. 각 지역 군대와 지방관들이 겁을 먹고 달아나는 경우도 많았고 결정적으로는 신립의 중앙군이 대패를 하는 바람에 한양을 방어할 군대가 없었다. 선조는 부랴부랴 몽진을 하게 되었고 명나라와의 국경부근인 의주까지 도망을 갔다.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을 가는 상황이니 그야말로 나라가 망할 판이었다.
그때 전쟁의 방향을 바꾼게 이순신 장군이다. 당시 왜군은 보급을 조선내에서 하려고 했다. 곡창 지대인 전라도를 점령해서 그 군량을 남해와 서해를 통해서 북방으로 실어나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길목을 이순신의 수군이 막아섰다. 그리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전열을 재정비한 관군도 힘을 내기 시작하면서 전라도를 보전하고 남해의 제해권을 우리 수군이 장악하면서 왜군은 진격하기가 어려워졌다. 게다가 조선의 원군 요청을 받아들여 명나라에서 원군이 도착해서 전쟁은 다르게 흘러가게 되었다.
조명연합군과 왜군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가고 명나라와 왜국과의 협상이 시작된다. 왜국의 터무니없는 요구로 협상을 결국 결렬되고 왜국은 다시 침략한다. 이것이 정유재란이다. 이때는 조선군도 어느 정도 준비를 해서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진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수군이었다. 일본의 이간계와 선조의 오판으로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이던 이순신을 해임하고 원균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다 안다. 그런 실책이 없었다면 전쟁은 더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을텐데.
왜군이 성을 쌓고 장기 농성에 들어가면서 전쟁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지만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왜군은 급히 철수하게 되었다. 그 마지막 전투가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이다. 이순신 장군의 죽음과 함께 7년 전쟁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분명 전쟁 대비에 소홀함이 있었고 왜군의 기세는 엄청났다. 하지만 의병의 봉기에서 보듯 당시 조선인들의 항쟁 의지는 높았고 이순신과 조선 수군의 우세함과 함께 전체적인 국난 극복의 의지가 왜군보다 앞섰기에 결국 외적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의 무능함과 시기심 등은 지금 생각해도 분노가 치밀어온다.
한편 16세기 최대의 동아시아 삼국 전쟁이었던 임진왜란은 각 국의 정치적인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국정의 난맥상을 보이던 명나라는 조선에 원병을 파병하면서 적지않은 손실을 입었고 왜란동안 북방 여진족이 결집하는 것에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후 여진족을 통합한 누르아치의 후금이 결국 명나라를 집어삼키고 대륙의 지배자가 된다. 바로 청이다. 그리고 일본은 도요토미가의 몰락과 함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새로운 일본의 지배자가 되면서 도쿠가와 막부를 설립, 이후 수 백년을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조선은 피폐해진 국력을 다시 복구하기도 전에 반정이 일어나서 광해군이 쫓겨나고 뒤를 이은 인조의 무능으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게 된다.
책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조선, 명, 왜 세 나라의 정치적인 상황을 설명하면서 어떻게 전쟁이 일어나고 전개가 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전쟁의 여파로 각 나라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알려주면서 전체적인 임진왜란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한다. 임진왜란은 그 후로도 없었던 최후의 삼국 대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 정도면 임진왜란이 어떤 성격의 전쟁이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원래 이 책 내용은 동명의 방송이었다. 드라마와 다큐가 혼합된 형식이었는데 방송 내용이 괜찮았다. 이 방송 내용을 보완해서 책으로 펴냈는데 방송을 보지 못했어도 책만 읽어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잘 쓰여졌다. 전쟁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여러 상황이 복합적인 상태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입체적으로 잘 보여준 책이었다.
당시는 우리의 주적이 일본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단되어 있는데다가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일본은 그대로 있고 그때의 원군이었던 중국은 새로운 호전적인 국가가 되어 있다. 북한과 통일을 한다고 해도 중국과 일본의 안보상 위협은 그대로인 것이다. 우리가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이 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임진왜란의 극복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어떠한 현실 인식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