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을 읽고 난 후 느꼈던 깊은 마음의 흔들림을 잊지 못하여
약간은 조급해하는 마음으로 김탁환씨의 소설 "허균~"을
읽었다. 내 내면의 시선의 이끌림은 이번에도 역시 일어나고 말았다.
김탁환씨가 연이어 발표하고 있는 역사 소설들은 지극히 중요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리얼하게 인간의 내면 갈등과 고뇌를 통하여
잘 형상화하고 있다고,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생각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허균의 내면적 바램이었다.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을 통해 아내와 자식까지 잃는 크나큰 쓰라린 아픔을 겪고,
또 조선 팔도의 명산과 명승을 탐방하며 신선이 된 듯한 자유로움을 누리고,
여러 지방의 유명한 기생들과의 자유 분방한 연애를 실컷 해보고,
공맹 사상은 물론 노-불 사상까지 접하며 인생의 궁극적 진리를 깨치려 하고,
인생의 여러 가지 감정들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시를 짓고,
마음이 통하는 어여쁜 첩 추섬과 애틋하고 각별한 사랑을 나누면서도
이 모든 인생의 달고 쓴 맛을 뼛 속 깊숙히 맛보았으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내면의 강고한 바램,
바로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해주는 제대로 된 정치-사회를
만들어보고자 하였던 간절한 소망을 이 소설의 허균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세상을 탈(脫)하여 영원과 불변의 세계로 들어가 편히 쉬고자 하여도
여전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속세에 남겨진 다른 인간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느끼고 그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속세의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이 어떤 것일까
하는 물음에 대한 한 가지 리얼한 대답의 시도가 바로 이 소설의 집필과 독서
의미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