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史에서 본 기하학史 이야기
santaf 2004/01/24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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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수학 가운데 근대에 '기하학'으로 분리된 수학의 한 분야가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개괄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이다. 저자가 수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물리학이라는 과학의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하학적 전환점들을 소개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물리학자답지 않게 저자가 역사에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서 기하학 이외에도 중요 수학자의 생애에 대해서도 매우 생동감 있게 재미있게 잘 이야기해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번 설에 부산에 내려가 있던 친구가 읽다가 재미있다고 갑자기 전화를 해줘서 읽게 되었다. 결과는? 확실히 읽는 재미는 보장되니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비교적 어려운 수학자들 개인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편하게 쏙쏙 골라서 들을 수 있기까지 하니, 보너스가 만만치 않다. 개인적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인 피타고라스와 현대 초끈이론 분야의 주도적인 이론물리학자인 에드 위튼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피타고라스는 신비주의자로서 얼핏 보면 예수와 비슷했다는 내용을 저자가 인용하는데, 짧은 이야기였지만 참 재미있었다. 피타고라스는 예수처럼 그를 추종하는 비밀 공동체를 조직했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등 현자적 가르침을 설파했으며,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 등과 같이 예수와 매우 비슷한 내용의 신화를 많이 남겼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피타고라스의 전기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이에 비하면 에드 위튼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가 직접 경험한 것을 들려주기 때문에 이 책의 희소성을 더욱 높여준다. 초끈이론 개발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대가인 에드 위튼은, <엘러건트 유니버스>에서도 초인적 연구 능력을 지닌 '괴물'이라고 소개된 바 있는데, 저자와 똑같이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학부를 마치고 프린스턴 물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해서 파인만 이후 수십년간 물리학계를 이끌다시피 할 정도로 영향력이 매우 큰 물리학자였는데 그는 사실 학부에서 전공은 非과학인 '역사학'이었고 게다가 학부에서 물리학 수업은 하나도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온갖 멸시와 냉대 속에서도 꾸준히 끈이론의 산파 역할을 했던 슈바르츠가 파인만이나 다른 동료 물리학자로부터 심한 무시와 놀림을 당했다는 일화 역시 숨겨진 비화를 읽는 재미를 한층 높여주었다.
이젠 책 내용에 대해, 개인적-주관적으로 재미있었던 부분이 아니라 일반적-객관적으로 잠깐 소개해야겠다. 이 책은 기하학의 큰 변화를 가져온 다섯명의 수학자-물리학자들의 업적과 그 의미를 중심적으로 다룬다. 유클리드, 데카르트, 가우스, 아인슈타인, 위튼이 바로 그들이다. 유클리드는 기하학을 서구인들에게 맨처음 가장 영향력 있게 소개했고,
데카르트는 기하학을 대수학과 연결시킴으로써 기하학적 문제를 간단히 대수적으로 풀 수 있도록 좌표-그래프를 소개했으며, 가우스는 非유클리드 기하학을 위한 기초를 닦았고, 아인슈타인은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공간이 유클리드 공간이 아니라 非유클리드 기하학을 이용하여 잘 설명된다는 점을 밝혔고, 마지막으로 위튼은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중력)이론을 결합해 만물을 단일한 원리로 통합해서 설명할 수 있는 초끈이론을 위한 새로운 기하학을 정립했다.
이 책은 수학자가 아닌 물리학자 출신의 저자가 집필한 흔적이 역력하다. 우선 책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이 수학사보다는 물리학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선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인슈타인, 위튼은 수학적 업적보다는 물리학적 업적으로 더 유명한 사람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특징은 이 책의 단점이 아니라 차별적 장점이다. 현대물리학이 나오기까지 기하학의 변천이 어떻게 이루어져왔는지 매우 생동감있고 재미있게 잘 쓴 책이다. 역사학을 '非과학'으로 여겼던 저자가 오히려 일반 역사적 사료들을 풍부하게 활용하여 썼다는 점에서 더욱 웃기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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