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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에 뿌리박은 현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을 아는 사람은 많을지 모르지만 맥스웰이나 볼츠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한편, '엔트로피'라는 단어는 한 번쯤 들어봤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은 뉴턴 역학과 전자기학 및 열역학으로 완성된 고전역학에서 현대의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중간기를 살면서 그 연결의 매개자 역학을 담당했던 볼츠만이라는 '천재' 과학자에 대해 전기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양자역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막스 플랑크에 비해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볼츠만의 업적, 동료 과학자들의 공격을 극복하고 그러한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울여야 했던 노력, 원자론을 둘러싼 당시 과학계의 논쟁 양상 그리고 볼츠만 개인의 불안했던 성격과 생활 등에 대해 잘 소개해주고 있다.

저자의 집필 의도는 볼츠만 개인의 '천재성' 찬양이라기보다는 과학에서 관찰과 이론, 또는 실험과 가설은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라는 과학철학적 문제에 대해 현대 이론 물리학 현장에서 일했던 저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얻은 저자 자신만의 주장을 이야기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한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볼츠만의 원자론이라는 극적인 소재를 채택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이 책의 제목인 '볼츠만의 원자'는 19세기후반 ~ 20세기초반 사이에 당시 과학계의 중요한 쟁점이었던 열역학 제2법칙의 기초 확립 문제에 대해 맥스웰이나 볼츠만이 주축이 되어 주장했던 기체 분자운동론을 뜻하는 말이다. 독일의 물리학자 클라우지우스가 천명한 고립계에서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운동이 일어난다는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해 볼츠만은 '원자'나 '분자'들이 어떻게 운동하는지 뉴턴 역학적으로 그 원리를 설명하려고 했다. 즉, 엔트로피 증가라는 거시적 현상을 기체 분자들의 뉴턴 역학적 운동이라는 미시적 기초를 통해 과학적으로 밝히려고 볼츠만은 노력했고, 그에 대한 반대자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원자라는 개념을 굳이 물리학에 도입하는 것은 물리학적 설명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이러한 반대자의 대표자는 음속의 단위 '마하'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물리학자 겸 과학철학자였던 마흐였다. 마흐는 관찰된 자료들 사이의 패턴을 기술하는 것 이외의 어떠한 '직접' 관찰될 수 없는 개념이나 가설들은 물리학의 설명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며 볼츠만을 공격했다. 한편 수학자로 유명한 제르멜로, 볼츠만 대신 베를린 대학 물리학 교수를 차지한 플랑크 등은 볼츠만이 확률론적 방법을 결정론적인 역학과 섞었다는 이유로 볼츠만을 비판했다. 기체분자운동론에 우호적이었던 실용주의적인 영국의 과학계와는 달리 본질이나 의미를 중요시했던 독일 과학계는 볼츠만의 이론에 대단히 적대적이었고 이러한 이유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볼츠만은 자살했다고 한다.

참고로, 확률론적 방법을 도입했다고 볼츠만을 비판했던 플랑크는 막상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흑체복사법칙을 연구하고 나서는 볼츠만의 방법의 필요성을 깨닫고, 다시 이번에는 거꾸로 마흐를 비판했다고 한다.

20세기 중반 빈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논리실증주의 운동에 대해 논리실증주의에 따를 경우 과학자들 자신조차 서로의 실험 결과에 대해 일상 언어를 통해 의견을 교환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게 될 것이므로 논리실증주의는 너무 극단적인 잘못된 입장이라고 비판했던 보어의 언급처럼, 이 책에서도 저자는 '직접 관찰'이 불가능한 이론과 가설을 모두 제거할 것을 주장하는 마흐의 주장은 너무 극단에 치우친 것으로서 물리학의 발전을 방해한다고 볼츠만의 생애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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