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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에 뿌리박은 현실
신경생물학자와 수학자가 만나서 서로 자기가 아는 지식을 어떻게 상대방의 학문에 적용 또는 투영(projection)시킬 수 있을지 토론한다. 정돈된 결론과 정리를 제시하며 설명하기 보다는 어떤 것들이 가능할 수 있는지 이것저것 마구 떠들어대며, 자기의 상상력을 꺼내 보여주는 편에 가깝다.

간단히 말하자면 두뇌와 수학적 대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경생물학자는 두뇌를 연구하고 수학자는 수학적 대상- 예를 들어, 소수(prime number)-을 연구한다. 각자 자기 전문 필드에서 지금까지 연구했던 결과물들을 서로에게 소개해주고 상대방 의견을 구하고 한다. 수학적 대상은 물리학의 대상인 자연과는 달리 정신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정신은 두뇌라는 물질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일 뿐이므로 수학적 대상은 두뇌와 같은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구성물일 뿐이라고 신경생물학자인 샹제는 줄기차게 주장한다. 반면에 수학적 대상은 개별 수학 연구자의 연구 활동과는 관계 없이 다양한 연구 주제와 시대에 걸쳐 놀랍도록 일관성을 보여왔으므로, 수학적 대상은 수학자 인간의 구성(construction)과는 관계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수학자인 콘느는 줄곧 반론을 펼친다.

수학적 대상이 일종의 문화적 표현체 또는 문화적 대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두 학자는 일단 의견이 일치한다. 즉, 수학적 대상도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수학적 대상의 존재성이 얼마나 인간 수학자의 활동에 독립적이냐 하는 것이다. 샹제는 새로운 수학적 대상이 나타날 때마다 필요를 느낀 인간 수학자가 구성한 결과로 새로운 수학적 대상이 나타날 뿐이므로 수학적 대상의 존재성은 인간 수학자의 활동에 의존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콘느는 인간의 자의적인 조작 활동과는 독립적으로 자기 완결성의 놀라운 논리적 특징에 따라 수학적 대상이 존재해왔으며, 인간 수학자는 그러한 수학적 대상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예전에는 인지하지 못하던 새로운 수학적 대상을 필요에 의해 인지하게 되고나서야 비로소 '발견'하게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콘느의 논의에서 수학적 대상 존재성의 독립성에 대해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는 근거는
'수학의 비합리적인 효율성'이다. 즉, 논리성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편의'에 따라 구축된 수학이 인간적인 '편의'에는 전혀 관심 없는 자연에 이상하게도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으로 잘 적용된다는 이해하기 힘든 비합리적인 사실이 바로 '수학의 비합리적인 효율성'이다. 콘느의 말은 '수학의 비합리적인 효율성'만 보더라도 수학적 대상이 인간의 '구성'에 대해 상당히 독립적인 존재성을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 내용은 수학적 대상은 인간 두뇌의 산물이므로 플라톤적 실재론은 맞지 않다는 샹제의 공격과 '수학의 비합리적인 효율성' 측면에서 수학은 인간 두뇌의 활동과는 독립적으로 자연과는 또다른 물질성을 갖는다는 콘느의 방어가 반복된다. 진화론이 어떻게 수학에 응용될 수 있고, 위상수학이 신경생리학에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 간단하게 설명하는 대목이 조금 나오긴 하나, 설명을 듣는 학자는 딴소리하기 일쑤이며 설명하는 학자는 혼자말하기 일쑤이다.

마지막 파트인 [윤리의 문제]는 문화-윤리-철학 방면에 대한 샹제의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지식 뽐내기로 점철되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샹제의 기나긴 '문화이론'적 설교를 6개의 챕터 형식으로 편집했고, 콘느의 지극히 짤막한 건의를 1개의 챕터 형식으로 끼워넣은 것은 바로 이 책에서 계속되는 혼자말하기와 딴소리하기의 백미라고 하겠다. 괴델의 정리와 튜링 기계를 논하는 대목 또한 딴소리하기와 눈꼴 사나운 야합하여 서로 칭찬하기의 극치이다.

학제적 연구의 시도라는 용기는 가상하나 밀도 높은 토론이라는 좀더 책임있는 결과가 부족해 아쉬움을 많이 남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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