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일이 어떤 일인지 잘 몰랐다. 잘 몰라서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이라는 열린 방에 들어가 며칠이고 앉아있는 날이 많았다. 궁금해서, 잘 몰라서, 이해해보고 싶어서. 소설은 나를 내쫓거나 몰아세우지 않고 그렇다고 말을 걸지도 않고 계속 앉아 있게 내버려두었다. 가끔은 방안으로 환한 빛이 들어와 나와 함께 머물렀다. 그 빛이 내 손목에 올라타거나 발등을 덮으면 제법 어색하고 무겁고 따뜻했다. 나는 이것이 소설이라고, 단지 그 정도를 알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앉아 있어야지 다짐하고서 정말로 매일매일.- P36
「추도」를 쓰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법과 아름다움이다(그래서 다음에 쓴 소설의 제목이 ‘법의 아름다움‘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처음엔 의문이었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더라도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미만이라면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건 음주운전을 한 게 아니게 되는 걸까?
‘행위가 실재했는지‘와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 ‘행위가 적법한지 위법인지‘ 이 세 가지는 한몸을 이루지를 않고 각기 다르게 움직이며 겹치기도 하고 비껴가기도 하는 것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특히 2025년에 저 세 가지가 서로 충돌하는 사건들을 많이 목격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 P74
아름다움이 옳은 것이라는 말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치장교의 군복, 금빛 머리, 사랑하는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얼마나 잔혹한가.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이다.
옳은 것이 아름다울 것이라는 말 또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오물과 소음, 구질구질한 것들이 표백된 아름다운 세계는 과연얼마나 정의로울까.
근 몇 년 사이에 아름다운 것, 옳은 것만 남기고 그렇지 못한것은 모두 없애버리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존재가 옳지 못하다. 아름답지 못하다는이유로 사라지고 있을지.
쓸모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것도 존재하는 세상이야말로 아름다운 세상이지 않을까?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의미와 아름다움을 좇게 된다. 천성이 그러한 것 같다. 내가 좇는 아름다움이 뭔가를 소외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도 모르는 채로 세상을 나쁘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언제나 두렵다.- P75
어쩌면 이런 생각들은 전부 위선인지도 모르겠다. 「추도」 속 해주는 백부의 공장에서 죽은 청년에 대해서는 마음으로만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를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해주가 실제로하는 일은 백부와 백모를 위한 일들이다. 그런 해주가 죽은 청년을 위해 기도를 한다면 그야말로 위선일 것이다. 그건 그저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기도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래서 해주는 누구를 위해서도 기도하지 못한 것 같다.- P76
「추도」를 쓰기 시작할 때, 해주가 주기도문의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문장을 ‘우리의 죄를 사하지 마시옵고‘라고바꿔 말하는 것을 결말로 정했었다. 소설을 완성하고 나니 그대목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나는 여전히 해주가 우리의 죄를 사하지말아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다.
사실 나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기도를 한다면 이렇게하려 한다.
그 밖에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죄까지도 모두 벌하여주소서.- P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