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시간을
시간이 미래를
봄이 오면 봄꽃 피고 여름 오면 수영하고
그런거 말고
존재의 바다로 풍덩 빠져드는
그런 시
쓰고 싶었는데요
아침에 뜨는 해가 만드는
벽의 빛
그런 거 말고
그런 시시한 거 말고
그런데 이상하게 감동적인 거 말고
정직하게 좋은 시
쓰고 싶었는데요- P-1
점심 먹고 산책 갔습니다
햇빛이 쓴 것과 햇빛이 지운 것
검은건반과 흰건반처럼
허리가 길고 검은 개
긴 전신주 그림자
그런 것 뭉텅뭉텅 밟고 지나갔고요
한의원 한약방 냄새
구구구 비둘기들
지나가며
혁명!
이라고 쓰인 책과
혁명!- P-1
없는 세상 사이에서
전기세 오르고 가스비 오르고
월급이 삭감되어도
해를 보며
이상하게 마음 안에 빛이 가득 차 있어요
미래없음 전망없음
희망인력 힘찬잡부
마치 하나의 말인 것처럼
지나가면 지나가겠지요
희망이 시간을요
시간이 미래를요
냉장고 안에는
애호박이 양상추가- P-1
썩어가고 있어요 천천히 조용히
살아 있음을 다하는 형태로
대파를 한단 사면
대파로 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떠올리듯이
머리 위의 빛이 나지 않는 비행기를
계속 문지릅니다
그러면 날아갈 수 있다는 듯이
반박자 빠른
제멋대로 느려지는
그런 리듬
그런 발자국
속에 흔들리는 세상을
보고있어요- P-1
보고 있습니다
반은 그늘에 반은 햇빛에
잠긴 채로요- 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