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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동호와 희철이에게
김중미


"만나서 하는 일이란, 무슨 할 일을 만드는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만나서 서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이야기 나누는 그런 사소한 일에 불과하지만 그저 만난다는사실 그것이 그냥 좋을 뿐이었다."(「청구회 추억)
1988년부터 지금까지 공부방 큰이모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들과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 그저 계속 관계를 만들고 이어 갈 뿐이다. 처음 공부방 문을 연 뒤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지만 공부방은 여전하다. 계속해서 약하고 가난한 이들이 흘러 고이기때문이다.
선생은 한밤중에 찬 마룻바닥에 엎드려 청구회의 추억을 적으며 두려움과 절망을 잊었다고 했다. 선생에게 "청구회 추억은 그 절망의 작은 창문"(「담론』)이었다. 공부방이 38년동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과 쌓은 추억, 그시간의 힘 때문이다. 사형을 앞두었던 선생의 그 절망에 댈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매 순간 두렵고, 버겁고, 지쳐 절망에 빠진 순간들이 있었다. 선생을 절망에서 구원한 청구회추억처럼, 나는 동호, 희철이와의 추억이 있어서 도망가지않고 계속 아이들을 만났다. 상도가 공부방 앞에서 11톤원목 트레일러에 치여 죽었을 때도, 79년생 아이들이 번갈아 구치소를 들락거릴 때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아이들의 장례를 치르고서도 도망가지 않았다. 청구회 아이들이 선생에게 절망의 작은 창문이었던 것처럼 공부방 아이들이- P93
내게 창문이었다. 그 창으로 보이던 별빛, 어둠을 밀어내고 기어이 말간 얼굴을 내미는 햇빛 덕분에 살았다.
청구회 회원들이 ‘어린이‘여서 선생에게 구원의 시간이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생은 여러 책에서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정대의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 현대문학을 읽던 노인, 생계를 위해 피를 팔면서 헌혈 전에 물을 너무 마신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청년, 집을 그릴 때 주춧돌부터 그리던 목수, 치약 하나도 빌려 쓰지않으려고 위악을 부리던 청년. 선생의 눈과 귀는 청구회의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약자들을 향해 열려 있었다.
신영복 선생은 「강의』에서 맹자의 ‘이양역지‘ 를소개하며 ‘본 것‘과 ‘못 본 것‘의 엄청난 차이에 관해말한다. ‘본 것‘과 ‘못 본 것‘은 생사가 갈리는 차이라고했다. 선생에게 ‘본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 관계를 갖게되는 것이었다. 선생이 만난 청구회의 조대식, 이덕원, 손용대는 천진무구한 어린이가 아니라 전쟁을 겪고도 살아남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상징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어린이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선생은 자신이 특별히 어린이를 좋아한다고 대답하지않았다. 나는 선생의 그 대답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어른들은 흔히 어린이를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존재로 상상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진 편견과 오해로- P94
어린이들을 대한다. 마냥 순수할 것만 같은 아이가 가시를드러내거나 되바라진 말을 하면 ‘애답지 않다‘고 혀를 찬다. 여섯 살이든, 열 살이든, 여남은 살이든, 어린이들 역시 자신들이 서 있는 공간, 그들이 통과하는 시간으로부터 초월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어린이의 삶에도 그 시대의 문화,
질곡과 정서가 고스란히 새겨진다. 원래 나쁜 아이, 원래 착한 아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선생은 "어떤 개인의 아픔이나 고통을 그 자체로받아들이기보다는 그 개인적인 아픔이나 고통 속에서 그것의 사회성 나아가서는 역사성을 읽어 내야 한다"고했다. 나 역시 아이들이나 이웃의 고통과 슬픔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들 몸에 새겨진 사회성과 역사성을 보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여름방학이 되면 충북 괴산으로 공부방 초중고아이들과 대학생, 이모 삼촌들이 다 같이 여름 캠프를 간다. 30년 가까이 변함없이 우리를 품어 주는 ‘솔뫼농장‘은 시설이 매우 낡았다. 주변에 생수 공장이 생기고, 자연 하천이 사방공사를 하고, 논농사 중심에서 밭농사로 농사 형태가 변하면서 수자원까지 고갈되어 물 쓰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좋은 리조트나 캠프장 대신 ‘솔뫼농장‘으로 가는데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지만, 낡고 추레하고 불편한 그곳이 오히려 우리의 장을 만드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P95
곳이기 때문이다. 공부방 아이들은 시설 좋은 수영장이나 워터파크가 아닌 개울에서도 지칠 줄 모르고 논다. 깊은곳이나 물살이 센 데가 있어도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 이모 삼촌들이 함께하니 안전하다. 잠은 여자 방, 남자방에서 스무 명, 서른 명이 한꺼번에 자기 때문에, 예민한 아이는 코 고는 소리, 잠꼬대 소리에 잠을 설친다. 그래도 아침이 되면 또 어떤 재미있는 하루가 펼쳐질까 기대에 찬 눈빛을 맞춘다. 누구도 외딴 점으로 떨어져 있지 않다. 서로 연결되어 있고 어디서든 장을 이루어 함께한다.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자면서 힘찬 에너지를 뿜어낸다. 캠프3박 4일 내내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공부방 아이들이 웃는 모습은 어떤 분노와 슬픔이라도 다녹일 만큼 강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폭염 속에서 80인분의 세끼 밥을 하면서도 힘들지 않았다. 아이들의 웃음은 5월 햇살보다 눈부시고, 6월의 숲보다 더 싱그럽고,
9월의 하늘보다 더 푸르다. 그러나 아이들의 그 웃음 뒤에 어른들보다 더 깊은 상처와 상실, 두려움, 분노, 불안이 숨어있다. 아이들의 웃음 뒤에 숨은 무기력과 불안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보지 않으면, 그렇게 웃던 아이들이 드러내는 분노와 무기력까지 이해하고 사랑할 수 없다.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경제적 결핍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다른 결핍을 낳기도 한다.- P96
공부방이 있는 지역에는 정신적, 신체적 장애가 있거나 이주 배경을 가진 주민이 많다. 재개발로 지역 공동체가 무너지기 전에는 가난한 이웃들끼리 서로 도우며 살았다. 먹을 것을 나누고, 불편한 몸을 대신해 주며 살았다. 가난한 동네의 골목은 생명의 연결망이었다. 그 연결망을 따라 사람이 모이고, 이야기가 모여 ‘우리‘가 되었다. 골목에는 외딴 점이 없었다. 모두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었고 여러 개의 ‘장‘을이루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선과 장은 구제금융과 재개발의 파고를 겪으며 끊어지고 사라졌다. 팬데믹 이후에는 사람들이 각자 외딴 점으로 살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저마다 각자도생밖에 길이 없다고 믿는다. 어른들이 각자도생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학교에서, 동네에서, 집에서 외딴 점이 된다. 정부는 아이들이 외딴 점이 되지않게끔 학교 안에 돌봄교실, 늘봄학교를 만들며 생색은내지만, 그곳에서는 점과 점이 만나 선을 이루기 힘들다. 아이들을 그저 돌봄을 받는 대상으로 볼 뿐 주체로 여기지않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은 여러 책에서 연대는 위에서 소수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모여이루는 낮은 연대가 진짜라고 했다. 나는 이 시대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존재가 어린이 청소년이라고 생각한다.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거나 장애가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P97
더 낮은 자리에 있다. 우리 사회는 어린이와 청소년과 연대하지 않으려 할 뿐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연대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서로 연결이 간절하다. 약하고 가난한 이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희망을 만들어갈 수 없다.

「청구회 추억을 다시 읽으며 만남과 연결에 대해, 그 이후에 대해 상상할 수 있었다. 「청구회 추억」을 통해 나를 지금 여기로 이끈 만남을 추억하며, 내가 서 있는 길을 자각하고 다음 걸음을 생각한다. 「청구회 추억」 덕분에 추억 여행을 하며 다음 여행을 준비할 수 있었다. 선생에게 구원의 시간을 선물한 ‘청구회‘ 주인공들은 2026년 현재에도 여전히 선생과같은 어른이 필요하다.
「청구회 추억」 말미에 있는 선생의 문장으로 추억 여행을 마치려고 한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추억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만나는 곳은 언제나 현재의 길목이기 때문이며, 과- P98
거의 현재에 대한 위력은 현재가 재구성하는 과거의 의미에 의하여 제한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추억은 옛 친구의 변한 얼굴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추억의 생환이란 사실을 나중에 깨닫기도 한다.
생각하면 명멸하는 추억의 미로 속에서 영위되는 우리의 삶 역시 이윽고 또 하나의 추억으로 묻혀 간다. 그러나 우리는 추억에 연연해하지 말아야 한다. 추억은 화석 같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단히 성장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
언제나 새로운 만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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