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보내는 편지
김미옥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난 것은 1988년 감옥으로부터의사색이었습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성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게충격이었습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에서는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이 문장에서 나는 눈을 가늘게 떴습니다. 단칸방에서 보낸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요. 당신의 모든책을 좋아하지만, 그중 제 손길이 가장 많이 닿은 것은『더불어숲입니다. 논리가 정연한 글은 배움을 주지만 감동을 안기지는 못합니다. 인간의 뇌는 지식의 십분의 일정도만 언어화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진정한 지식은 직관과 공감의 거대한 바다에서 일어선다는 말을 나는신뢰합니다.
당신은 논리를 앞세워 누구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했을 뿐입니다. 알고있었으나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그 모든 것, 어쩌면 학습된 무기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경쟁, 약육강식, 각자도생으로 덧칠된 우리가 만든 세계에 대하여 그리고 인간성에 대하여 당신은 우리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P15
아닌 ‘당신과 나‘로 연결되는 서간체의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요. 당신의 글엔 문학과 음악이 있었습니다.
강제로 유배지의 정주민이 되어야 했던 당신과 유목민으로 성장한 나와의 만남은 『더불어숲이었습니다.
당신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당장 당신의 답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당신의 답장을 읽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나는 당신에게 늦은 편지를 씁니다.- P16
당신의 글은 내게 서간문의 힘을 생각하게
합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유행했던 대중소설은 새뮤얼리처드슨의 파멜라나 장 자크 루소의 『신 엘로이즈등이었습니다. 약자가 강자에게 굴종하는 불평등한 관계가 당연시되던 시대에 서간체의 감성 소설이 대중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했습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에 감정 이입이되면서 자신과 동일시하는 현상이 일어났지요. 사람들은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하며 평소 자연스럽게 생각하던 가치관에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문학은 대중에게 균형감과 공감 능력을 향상하는 교육의 장이었습니다. 내가 당신의 글을 사상이 아닌 문학으로 읽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비극은 배타성이고, 특정 계층의 유대감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폭력‘일 것입니다. 힘없고 가난한 사회적 약자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당신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과 연대에 대하여, 그리고 나무와 숲에 대하여 몰입했습니다.- P17
먼저 당신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어릴 때 나의 꿈은 정주민이었어요. 한곳에 정착해서 뿌리내리고 싶었습니다. 객지를 떠돌다 잠시 머무는 동네에서 원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만나면 우리 식구들은 주눅이 들었지요. 가난도 부처럼 눈에 띄어 불평등과 차별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 생의 목표는
‘평범‘이었습니다. 나의 ‘평범‘은 사람들 속에 묻혀 누구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지요. 나의 성장 환경을 탓하는 건 아닙니다. 당신에게 이 편지를 쓰는 까닭을 말하고 싶기때문입니다.
제도권 교육을 받기 힘들었던 내게 유일한 친구는 책과 음악이었습니다. 외딴섬처럼 홀로 떠돌던 습관은 ㅡ어디에도 심리적으로 소속되지 않는 자발적 고립을 불렀습니다. 오랜 고립이 정주를 부정하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 읽고 쓰고 듣고 떠나는 생활에 익숙했습니다. 소외는 조직속에 있으면서도 조직의 구성원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조직은 개인의 합 그 이상이란 말도 경멸했습니다. 제게 집단은 ‘평균으로의 회귀‘였고 하향 평준화의 의미이기도했습니다. 내 생존 방식이 개인주의에서 기인한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더불어숲」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개인의 능률과 효율을 우선시하며 공감과 연대마저 조직이나 집단의 논리로 가두는 우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P18
어떤 이들은 제게 묻습니다. 왜 늘 길 위에 있느냐고. 그럴때면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가 아닌 저기가 내가 있을 곳 같다고, 그러니 언제든떠날 수 있어야 한다고.
아, 당신을 모를 때였습니다.
오래전 강연장 뒷줄에 서서 당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나는 끝내 당신에게 가까이 가지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신은 내게 말과 글과 삶이 일치하는 유일한 이였습니다. 존경하되 가까이하지않는다는 경이원지敬而遠之 당신은 내게 백석의 시에 보다 가까운 이였습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하신 분으로 느껴졌습니다. 나는 언제나 늦습니다. 마치 늪에 빠진 아이가 자기 머리를 잡아당겨 스스로 자신을 구출하듯 혼자 결정하는 삶에 익숙한 사람은 좋아하는 이에게도 쉽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제도권 밖의 사람은 뭐든 타인보다 더 큰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답장이 이렇게 늦습니다.- P19
1997년 1월 1일부터 당신은 『중앙일보』 칼럼에 세계여행기를 싣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첫 글은 스페인의우엘바 항구에서 보낸 엽서였습니다. 1492년 콜럼버스는산타마리아호를 타고 이곳에서 신대륙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 출항은 식민주의의 원년이었습니다. 오늘의신자유주의로 진화한 서구의 자본주의는 식민지에서빼앗은 부로 이룩되었습니다. 당신은 예감했던 걸까요? 우리나라가 국가 부도 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구제금융을 신청했던 날이 1997년 11월 21일이었습니다. 달러와 함께 강제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불평등과 양극화의 그늘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인간보다자본이 우선시되는 세상에서 당신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콜럼버스는 아직도 살아 있다."
자본의 극대화와 이윤 추구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그가 우리에게 왔습니다.- P20
스페인에서 보낸 당신의 두 번째 편지는 매일 12시면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그레고리오 성가로 시작됩니다. 잠시 내 어린 날 시골 초등학교 하굣길에 있던 수녀원을기억했어요. 나는 벚나무 담 위에 앉아 낯선 음악에 귀를기울이곤 했습니다. 성가는 내가 접했던 세상의 음악과달랐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음악으로 또 다른 세상에대한 희망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스페인 내전은 내게인간이 만들어 낸 온갖 이념의 잡화상 같았어요. 『누구를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헤밍웨이도 그 전쟁에 참여했었지요.
존 던의 시에서 가져온 제목이었습니다. 성당의 조종弔鐘소리는 죽은 자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그 시를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를 위한 기도인지묻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용서이며, 그 용서로 역사는진보하는 것이라고요. 핵심은 반복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시행착오는 늘 같은 지점에서 반복되지요. 틀리는 문제를계속 틀리는 자에게 필요한 건 실수의 원인을 근본적으로파악하고 해결하는 ‘메타인지‘일 겁니다. 알면서도 틀리는 건자만심과 어리석은 욕망이 우리 눈을 가리기 때문일 테지요.
세계의 많은 젊은이가 이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했어요.- P21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은 옳았습니다. "역사적 실체는 말할 필요도 없고, 지리적 실체이자 문화적 실체이기도한 동양 서양이라고 하는 장소, 지역적·지리적 구분은 모두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인종과 종교, 국적이 달라도 인간은 공존해야 합니다. 파괴는 무력으로만 자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언어 제국주의‘에 정복당한것만 같습니다. 인문 계열에 있던 중문과나 독문과, 불문과등의 많은 학과가 경제성과 실용성이란 미명으로 대학에서 폐지되었습니다. 중국 문학에 깊은 조예를 가진 어떤 교수는 학과가 폐쇄되자 교양 실용 언어를 강의하게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영어는 내게 언어 식민주의로 느껴집니다.- P25
당신은 누군가 장벽에 쓴 "사상은 하늘을 나는 새들의비행처럼 자유로운 것이다"라는 문장을 적었습니다. 나는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생각했습니다. 그작품의 원제목은 ‘베를린의 하늘‘이었습니다. 감독과 함께영화 각본을 쓴 페터 한트케는 노벨상 수상자입니다. 영화의오프닝은 그의 시 「아이가 아이였을 때를 배우 브루노간츠가 낭송합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팔을 휘저으며 걸었다"로 시작해서 시냇물이 강이 되기를, 웅덩이가 바다가 되기를 소원했던- P30
아이는 습관과 관념에 갇히는 어른으로 자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구절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나일까?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만 나일 뿐인데 그것이 나일 수 있을까?"입니다. 모든 것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며,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시가 저는 참 좋았습니다. 지금도 흥얼흥얼 노래처럼 읊조립니다.
내친김에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쓰다 말고 카리 브렘네스의〈A Lover in Berlin>을 듣습니다. 지금 4월의 하늘은 푸르르고 햇살은 눈이 부십니다. 나는 일어나 베란다 창에 기대어 커피를 마시며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But this falling made me fly, left me soaring for thesky.
그렇습니다. 때로 추락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게만듭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난다면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만큼떨어져 같이 음악을 듣고 싶습니다.
어떤 곡이든 상관없습니다.- P31
당신은 템스강과 타워브리지, 아름다운 성과
유적, 표준 시간을 독점한 그리니치 천문대를 둘러보며 막대한 금융자본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조선 시대 사랑채에서 유유히 소일하며 장부를 넘기고 있는 양반을 연상했습니다. 나는 템스 강둑에 앉은 버지니아 울프를 생각했어요. 20세기 런던의 대학 도서관은 남성 동반자 없는 여성이 혼자 출입할수 없었습니다. 그때 울프는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여자가 읽고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탄식했습니다. 세상은 달라졌지만, 21세기인 지금도 유효합니다. 내가
‘여성‘이란 사실이 갑자기 다가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는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급격합니다. 사람들은 그 원인으로 젊은 층의 비혼주의를 지목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수많은 울프가 결혼으로 경력 단절과 경제적 위기를 겪습니다. 가부장적 문화와 성 역할은 여전하고 책임감과 경제적, 심리적 부담은 부모 세대와 다를 바없습니다. 그들이 택한 비혼은 그들의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구조적인 해결 없이 관습과 문화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또다른 폭력이라고 생각됩니다.- P34
나는 당신이 보낸 46통의 편지에 다 답장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당신보다 더 많은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긴 여행을 떠난 지 십 년이 됩니다. 한시도 당신이 떠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면 당신과 내가 떠나고 돌아온 곳에 관하여 얘기할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당신은 겨울에 떠났지만, 당신이 있는 그곳에도 봄이 왔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의 오래된 아파트 화단은 벚꽃과 목련이 한창입니다.
늘 그랬듯 나는 당신이 있는 그곳으로 여행하게 될 겁니다.
그때 <엘 콘도르 파사>를 함께 부를까요?
"길(street)이 되느니 숲(forest)이 되고 싶다."
이 부분은 제가 부르겠습니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나의 선생님.- P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