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김명인
나이가 들면 외로워진다고들 한다. 당연한 말 아닌가 싶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생애의 끝부분에 가까워진다는 것이고 그것은 죽음으로 향하는 티켓을 끊어 놓고 순번을 기다리는일이다. 자기보다 앞 순번의 선배들은 하나둘씩 돌아오지 못하는 기차에 이미 올라탔거나 올라타기 직전이고, 더러는 동년배의 친구들이 새치기하듯 그 편도 행로에 먼저 오르기도 한다. 그들은 각자 자기 한 몸만 지니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일구어 왔던 자기 몫의 세계 한덩어리씩을 안고 떠난다.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의 세계에 어떤 방식으로든가깝게 연루되어 있던 남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이 퇴장한다는 것은 동시에 자기가 관계 맺었던 세계의 한 부분이 동시에 퇴장하는 것이 된다. 그 떠남이 점점 더 잦아지고 순번이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남은 사람들의세계는 축소되고 공허해진다. 그러니 외롭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그렇게 한 시대가.
한 세대가 저물어 간다.
역사는 다음 세대의 몫이다.
다음 세대가 이 퇴장하는 세대로부터 무엇을 취사선택하든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여전히 인정투쟁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이 퇴장하는 세대에게서는 더 이상 새로운 무엇은 나올- P-1
수가 없다. 자기가 생애를 두고 무슨 일을 했고 무슨 말을 했는지를 제대로 복기하고 정리할 수만 있어도 그 인생은 축복받은 인생이다. 여기서 무엇을 더 바란다면 그것을 노욕이라고, 더 많이 바란다면 노추라고 부른다. 자신의 세계가 축소되어 가는 것을,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몫이 점점사라져 가는 것을, 외로워지는 것을! 그저 온순하게 감수해야하고,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들 방법이 없다. 그저 자기시대에 자기에게 주어진 몫의 과제를, 자기가 할 수 있는만큼만 수행하고 떠난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족한 것이다.
그런데 가끔 자기 세대의 울타리를 넘어, 혹은 자기 세대로부터 이탈하여 어떤 잉여를 남기고 그것을 다음세대로까지 넘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특별히 위대하거나 우월한 존재들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은 특이한 존재들이다. 어떤 특별한 계기를 통해서 동세대가 공유하는 주류적 인식과 행동 체계와는 결이 다른 인식 체계나 삶의 방식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때로는 시대와 불화하여 독특한 작품을 남겨서 천재라고 불리거나, 남들보다 앞서가는 인식과 행동을 감행했다는 이유로 선구자라고 불리거나, 혹은 그저 별종이거나 광인이거나 비주류, 부적응자로 기억되거나, 아니면 일찍이 잊히거나 한다. 자기 세대 공통의 인식- P-1
체계나 삶의 방식에 충실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생의 후반에 가서야 느끼는 외로움을 그들은 생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경험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외로움은 그가 남긴 불화이거나 부적응이거나 초월의 흔적들이 다음 세대에서 재평가받는방식으로 보상되는 경우가 많다.
신영복(1941~2016) 선생이 타계한 지 올해로 십 년이되었다. 그의 1주기에 간행된 대담집 「손잡고 더불어라는책에 서문을 썼던 나는 어쩌다 보니 지금 그의 10주기를 기리는 일종의 회고 문집에 다시 또 서문을 쓰고 있다. 그 책의 서문에서 나는 그를 조심스럽게 ‘사상가‘의 반열에 올려놓았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때는 그의 ‘사상‘의 양상은 언급했으되 그 ‘사상‘이 어떤 생의 맥락에서 기원했는지, 또 그것을 어떤 사상사적 맥락에두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신영복 선생이야말로 동세대의 공통된 경험및 인식 체계와 일정한 분리를 겪음으로써 독자적인 인식체계에 도달했고, 그것이 세대를 건너 살아남아 다음 세대의공통적 인식 체계와 연결된 흔치 않은 특수한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말하자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앞서서 살아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후반생인 나의 경우 지금 60대 후반이므로 돌아오지 못하는 행로를 향한 편도 티켓을 이제 막 받아- P-1
놓은 셈이다. 기대 수명이 많이 길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생물학적 수명이 그렇다는 것이지 사회적 수명으로는 이제 퇴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 나이로는 생산노동 행정에서도 지식노동의 장에서도 결코 중심에 위치할 수가 없다. 애를 써서 목소리를 낸다고한들 좋게 말해 봐야 ‘어른, 혹은 원로의 견해‘이고 나쁘게 말하면 ‘한물간 꼰대의 잔소리‘로서 어느 경우든 그 영향력은 보잘것없는 것이다. 한 20년 위쪽의 선배급들은 이미 태반 이상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고 한 10년 위쪽의 선배들도 조금씩 길을 떠나거나 이제는 노년의 무게에 눌려 거의 대부분 칩거에 들어서고 있다. 대략 해방 언저리에서 전후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나 해방과 전쟁, 분단, 군사독재, 경제개발, 민주화를 한 생애에 겪었던 세대들이 이제 역사의뒤안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세대들의 인식 체계는 대체로 민족주의, 국가주의, 진보주의, 성장주의, 가부장주의 등이 뒤엉켜 있는근대주의적 인식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좌파적 경향이든 자본주의 체제를 신봉하는 우파적 경향이든 그것이 진보와 성장, 국가와 민족 등을 중심 가치로 두고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리고 그 모든 가치들은 주체와 타자를 구분하고 주체에 의한 타자의 배제를 그 동력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인식론적으로 일가족이다.- P-1
그 세대의 머릿속은 온통 민족해방이라든가 통일된 근대적 민족국가 건설이라든가 분단 체제 극복이라든가선진국으로의 도약이라든가 민주화라든가 하는 근대적 목적의식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의 가슴속은 그러한 목적의 성취를 위한 멸사봉공이라든가 희생과 헌신이라든가경쟁의식이라든가 치열한 투쟁이라든가 하는 숨 막히는정동들이 용솟음치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1941년생으로 4.19혁명 주체의 한 사람이었던 신영복선생도 출발은 똑같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1968년, 아직 20대 청년 장교의 신분으로 혁명적 조직 운동에 가입하여 군사독재 정권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기에 이르렀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로부터 20년 동안 감옥이라는 장소에서 바깥세상과 분리되어 있게 되면서 동세대와 다른경험 세계와 인식 세계를 가지게 되었다. 바깥의 동세대가 유신 체제를 통과하고 광주항쟁을 경험하고 신군부체제의 억압 속에서 민주화운동을 계속하고 한편으로는고도 경제성장의 수혜를 입으며 인생을 만끽하고 있는동안, 그는 감옥 안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수인들과 뒤엉켜 살며 동양고전을 읽었고 서예를 연마했으며 바깥을 향해서는 검열과 자기통제에 의해 한없이 낮아진 목소리로 짧은 편지들을 써서 내보냈다. 그 안에서 그는 바깥세상을 지배하던 근대성의 광풍에서 한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P-1
대신 전근대의 교양과 비근대의 일상 경험을 엮어 탈근대의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감옥에서 나온 후에도 80년대 말의 혁명적 민주주의 운동들과 일정한거리를 두는 것으로 일관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있다.
그리하여 환원론과 인과론을 넘어서는 지혜를 구한다거나 의지와 욕망 대신 성찰과 겸손과 절제를 말한다거나 완결성대신 미완성을, 중심 대신 변방을 주목한다거나 존재론 대신 관계론을 말한다거나 인본과 성장의 패러다임을 넘는 자연과 무위와 반문화의 철학을 내세운다거나 하는 그의 인식론이 숙성된다. 그리고 그 인식론은 애정에서 연대로 연대에서 입장의 동일함으로 나아가야 한다거나 ‘머리에서가슴으로‘를 넘어서 ‘가슴에서 발로‘ 나아가야 한다는 실천적 윤리학과 결합하여 근대의 한계를 넘어서 탈근대를 향해 나아가는 대안적 사상 체계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의 바로 이러한 탈근대적 대안 모색의 행보는 그의 삶과 사상이 자기 세대의 한계를 넘어 여전히 오늘의 세대에게 이월되어 영향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신영복 선생 타계 10주기를 맞아 간행되는 이 책 『당신이 나의 숲입니다-신영복을 읽는 시간』은 선생이 세상을 떠난 십 년 전에 비해서도 현격하게 모든 근대주의적 사상과 이념들이 빛을 잃어 가고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선생의- P-1
사상이 세상과 인간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글, 비참한 것들과 약한 것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파노라마를 통해 신영복 사상의 거점을 짚어 보는김미옥의 「숲에서 보내는 편지」, ‘관계를 맺으면 달라진다‘는관계론적 세계관의 핵심을 깨치며 나아가 신영복 선생의 여성적 관점에 주목하는 김하나의 「신영복이라는 바다,
‘기찻길 옆 공부방‘과 ‘청구회 추억‘의 기억의 병렬을 통해 약하고 가난한 이들의 연대와 희망, 만남과 연결의 힘을 증거하는 김중미의 「동호와 희철에게」, 신영복 선생의 고전 공부를 되짚으며 본다-만난다 안다‘는 관계론적 실천론에 주목하는 정지우의 「우리 시대 동양고전을 다시읽는다는 것」, ‘의기방자‘라든가 ‘호연지기‘ 같은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정념들과 거의 반대편에 있는 신영복 선생의 약한것들, 부족한 것들에 대한 애정과 보살핌의 윤리, 근대적인간성에 대한 비판에 주목하는 정희진의 「신영복의 평화를 생각한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살이가 언어를 버리고 몸과 실천의 세계에 주목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음을, 그로부터 선생의 품성과 감수성이 벼려졌음을 말하고 있는 최재봉의「신영복 선생과 서오릉 걷기, 신영복 선생에게서 삶과 글의 일치라는 어려운 경지의 증거들을 찾아내 보여 주는강원국의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된다」, 선생의 독창적- P-1
서법인 ‘쇠귀체‘에서 조형과 내용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글씨 예술의 근본을 돌이켜보고 있는 이동국의 「쇠귀체,
내력과 구조 너머의 아름다움에 대하여」가 바로 그 예중이다.
신영복 선생이 생전에 늘 힘주어 말했고 이 책의 곳곳에서 서로 다른 필자들의 글 속에서도 거듭 만날 수 있는 겸손, 성찰, 하방, 만남, 대화, 공감, 관계, 연결, 연대 같은 단어들, 대교약졸이나 불계공졸, 상선약수 같은 성어들은 경쟁, 성공,
상승, 투쟁, 희생, 헌신, 승리, 성취, 각자도생, 승자독식, 약육강식, 의기양양 같은 말들과는 다른 세상의 말들이다. 언뜻 들으면 매우 무력해 보이는 말들이지만 이제는 그런 말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이 지옥이거나 정글같은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은 만들어질 수가 없다. 선생이 원한 것은 아니었을지 모르나 세상이 이러한 말들을 원하고 있다. 돌아가신 분께 무슨 욕심이 남아 있으랴마는 세상이 선생을 놓아드리지 못하는 형국이다. 십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곁에 살아 계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이유다.- 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