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으며, 경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詩)‘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당신을 찾아서 슬픔이 택배로 왔다』,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 ‘내가사랑하는 사람」 수선화에게』, 영한시집 「부치지 않은 편지」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외 일본어 중국어 에스파냐어 러시아어 조지아어 몽골어 베트남어 등 번역시집이 있고,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동시집 「참새』, 우화소설집 『항아리」 「연인」 「조약돌」 「산산조각』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구에 ‘정호승문학관‘이 있다.- P-1
나는 언젠가 정호승 시인에 대해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의 상상력을 길어 올리는, 아주 오래된 시인이자 동시에 아주 새로운 시인"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는 시업 50여년 동안 진부함이라는 함정을 잘 피해왔다. 신선한 상상력이 있고 역설의 언어가 있고 선(禪)적인 일탈이 있고 반전의 힘을 지닌 덕분이다. 정호승 시의 상승과 비약의 지점에는 늘 역설과 일탈과 반전이 개입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정호승 시인은낯익은 시인이자 낯선 시인이고 오래된 시인이자 새로운 시인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번 시집에서도 역설의 언어, 선적인 일탈, 반전의 힘이 느껴져, 마치 의미와 무의미의 정류장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게패배가 없었다면/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내가 패배했기 때문에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봄이 오면 나는 천벌을 받을 것이다/사랑은 천벌이므로/기꺼이 당신의천벌을 받으며 행복해질 것이다" 등에서 보듯 일상성을 아득히 뛰어넘는 역설의 힘이 여전히 강렬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익숙한 사물의 이름표를 떼어내고 그 본질을 향해 낯선 질문을 던진다. 그의 시선이 닿으면 편의점은 더이상 편의점이 아니라, 어느 때는 지친 영혼의 시간을 재는 시계가 되고, 어느때는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사랑은 기꺼이 감당하는 천벌이자 어두운 부두를 밝히는 등불이 된다. 바로 그렇게 편의점이 편의점이 아닐 때, 정호승은 다시 한번 낯익고도 낮선 시인이자 오래되었지만 가장 새로운 시인이 되는 것이다.
김승희 시인- P-1
ㅣ시인의 말
신작 시집으로는 열다섯번째, ‘창비시선‘으로는 열두번째 시집이다. 시인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시집을 출간하는 일이 가장 기쁜 일이다. 내 인생에 열다섯번의 큰 기쁨을 선물해주신 절대자에게 감사드린다.
특별히 이번 시집 출간의 기쁨은 크다. 지난번 슬픔이 택배로 왔다』 출간 이후 더이상 시를 못 쓰게 될 줄 알았다. 50여년 동안이나 시를 써내 시의 샘이 말라버렸다고 여겼다. 누가 그 샘을 파묻어버린 게 아니라 아예 수원지(水源池)가 고갈되었다고 여겼다.
그래서 한동안 시의 샘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물과 밥을 먹어야하듯 시인도 죽지 않으려면 시를 생각하고 써야 했다.
시를 쓰기 시작하자 말라버린 시의 샘에 조금씩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 물을 꾸준히 퍼내자 샘은 마를 듯하다가 마르지 않았다. 퍼내면 퍼낼수록 샘물이 자꾸 고여 이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제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 한 내 시의 샘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시를 사랑한다기보다 시- P-1
가 인간을 사랑한다는 믿음이 더욱 커졌다.
시인은 시를 통해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한다. 나 또한 시를 통해 이 시대를 사는 인간과 인생의 비밀에 대해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은유의 숲에 숨어 진실을 숨긴 침묵의 부분이 없지 않다.
무함마드는 "두조각의 빵이 있는 자는 그 한조각을 수선화와 맞바꿔라. 빵은 몸에 필요하나 수선화는 마음에 필요하다"라고 했다.
나는 이 시집이 당신의 마음에 필요한 수선화가
되길 바란다. 사랑이 결핍되고 증오가 팽배한 이 시대에 시의 모성적 사랑의 가슴은 따뜻하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 백스물다섯편은 스물다섯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발표 신작시다. 시집 출간도 신작시를 발표하는 하나의 장(場)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2025년 가을을 기다리며
정호승- 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