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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시인의 말


빛은 그늘에서도 죽지 않고 자라는구나


2022년 여름
최백규- P-1
비행


목련도 모가지를 분지르는 사춘기였다

너는 웅크리고 앉아 꽃 덤불이나 뒤적거리며 홀로 우거진목련나무를 견디고 있다

버려진 관에 스스로 들어가는 나를 구경했다 마른 팔과다리는 가지런히 접어 넣기에 알맞아 보였다 새처럼 가벼운몸짓으로 죽어갔다 다가가보니 입안 가득 빛을 피운 미래가누워 있었다

언젠가 이 낙화가 멈추면 우리도 영영 추락할 거라 예감했다

갈 곳 없는 학생들은 빈 공사장으로 모였다 그늘에 널린몸을 아무도 해치지 못하도록 끌고 왔다 친구들은 멀리 버리거나 태우자 했다 시들어가는 식물의 뿌리를 대하듯이나는 서투른 우리를 모아 올린 대성당이라 칭했다 그곳에서 짧은 기도를 청하고 오지 않는 종말과 천사를 기다렸다- P100
이대로 마지막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잊어버리지말라는 인사가 혀에서 떨어지지 않아 목이 말랐다

어깨에 쌓인 첫눈을 털어내는 온도와 닮은 이름을 덮히면

꿈에서
헤집어진 늑골엔
머릿속이 뒤흔들릴 정도로 화사한 사원이 펼쳐졌다

희박한 빗소리로 울고

선잠에서 벗어나듯 아침이 오고 있었다 공터를 돌아다니며 소리쳐보았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목련도관도 공사장도 그대로 있는데 세상에서 나만 사라진 듯했다 몽롱한채로 열꽃의 잔해를 털었다

너는
타오르는 목련나무를 맹렬히 노려보고서 있다.
- P101
너무 뜨거워 설핏 녹아버릴까봐 겁이 난다 캄캄한 동굴같은 눈으로 나를 전부 집어삼킬 것만 같다 죄악감을 태우는 냄새가 번지기 시작한다 흰 날갯짓이 돋아나듯이

누가 계속 올라와야 할 시간이라 부르고 있어서

목련을 밟으며 앞으로 걸어나갈 것이다-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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