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항구‘
은빛 섬광으로 휘번득이며
고기가 노닐고
해초 나른하게 꿈꾸듯 춤추었다
환하게 드려다보이던 남쪽 바다
내가 태어난 항구
조그마한 통통배 타고
섬으로 갈 때
물살에 손 담가보고
바다의 바닥을 내려다보고
하얀 등대 떠 있는 곳
용궁 생각을 했었지- P-1
멀리 가까이
연인같이 오누이같이
다가서고 물러나는 섬,
순박한 사공 아저씨
환하게 웃던 얼굴
지금은 모두 전설이다- P-1
동춘東春
사람이 살면 몇백 년을 살것는가!
해 떨어지고
공기도 모습을 감출 무렵
동춘 해안 집을 지나노라면
술판 치며 눈 감고 꺽쉰 목소리로
노래하던 뱃사람
항구에는 불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잡화를 펴놓은 노점에는
생선배 찔러먹고 사는 사내
푸른 가스등이 소리를 내며 탄다
소금끼 먹음은 바닷바람
방천을 치는 물결소리- P-1
입항하는 뱃고동은 길게 길게 작별인 양 만만인 양상봉인 양 꼬리를 물고
아아 그게 언제였더라?
갯내음 실은 사람들은 모두 한복을 입던 시절
순사가 샤벨을 절거덕거리며 지나가던 시절- P-1
개미
옥색 새벽이 걷히고
비스듬히 햇살 드러누운 마당에서
세상사에 귀 막고 오봉산 바라보며
돌을 깐다
나보다 먼저 새벽 헤치고 나온 개미들
그들 부지런함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모이를 물고 종종걸음 치는 것이
가련하고 안스럽다
그도 생명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행, 불행의 길을
아슬아슬하게 가고 있으니
비바람을 피하고 홍수를 피하고
포식자를 피하고 기근을 피하기 위해
어찌 저토록 나브대는가- P-1
찰나의 별‘
인생살이 험난한 속에서도
쉬어갈 때가 있다고들 한다
쉬어갈 뿐이랴
황홀하고 아름다운 순간인들
없었겠는가
때로는 순간이
편안하기도 하고 황홀하기도 한 것은
암흑 속에서 타는 촛불이거나
칠흑 같은 밤
빛나는 별 하나이기 때문이리라
한 송이 꽃이기 때문이리라
고독한 고통이기 때문이리라- P-1
노을로 물든 강가*
상대방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머뭇거리고
단어도 곧잘 잊어먹는다
이승과 저승에다
한 다리씩 걸쳐놓은 듯
기막힌 상실감이
왜 이렇게 예사롭기만 한가
나는 인생을 다 살았는가
아니다 아니다 그럴 리 없지
온통 노을로 물든 강가
풀잎들이 사각거리는데
어릴 적에 심부름 가다가- P-1
오십 전짜리 은전 하나 잃고
종아리 맞던 생각
엄마는 멀뚱멀뚱 울지 않는 나를
간 크다며 때렸지- 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