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하지만 사실상 크게 놀랄 일도 아니며, 따라서 소란도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에게 실제로 닥치면 충분히 당황할 수밖에 없는 종류의 일첫번째 탄원서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출한 지 일주일 만에 우체국 창구에 앉아 있는 나이 든 여자 담당자로부터 접수가 거부되었다는 제출 요건에 미달하므로 통보와 함께 봉투째 되돌려 받은 것이 전부였다. 여자 담당자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 30년 동안있었답니다. 하는 말.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고, 이경우에는 부주의하게도 서툰 자만으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리라. 나이 든 담당자는 입술에 주름을 강하게 모으고, 뭔가 말하고싶고 그럴 수도 있으나 말하지 않겠으며, 말하지 않음이 순전히자신의 고귀한 의지에서 연유한 것임을 드러내고야 말겠다는 적극적이고 투철한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나는 어쩌면 앞으로도 30년- P9
동안은 더 이곳에 있겠지. 그러나 너는 끝내 아무런 대답도 듣지못할 거야. 하는 제삼자의 신경줄로 이루어진 무의지적인 의지.
깊숙하게 들어간 눈두덩 아래서 눈동자가 수니를 향해 흐릿하게 번쩍거렸다. 그 눈동자는 수니의 것이기도 했다. 거울의 세상에서 모든 사물은 반사이므로. 하지만 거의 동시에 제출한 두번째탄원서는 조금 더 시간을 끈 다음에 위원회가 열릴 것이란 통보까지는 받았으나, 2주일 정도 후 결국 ‘도저히 불가함‘이란 스탬프가 찍힌 결정서와 함께 되돌아왔다. 귀하의 소망과 그 소망의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진심으로 호의와 공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조항과 절차를 먹고사는 관료주의의 유령이 아니며 편의와 효율보다는 한 개인의 간절함을 더욱 소중히 할 줄 알기에, 귀하의청원이 이 체제 안에서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충분히 검토했고 설사 변칙이라 해도 다른 가능성이 있는지 여러 면에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살펴보았으나, 귀하와 같은 22조 수정 항의 경계성 케이스가 우리의 추가 부담 감당 능력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게 많을뿐만 아니라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므로, 우리는 안타깝게도 극히 제한적으로 예외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 P10